항목 ID | GC0510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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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文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조선 전기 - 정문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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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조선 전기 - 정문예 사망 |
묘소|단소 | 정문예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 삼귀 |
사당|배향지 | 삼귀재(三歸齋) -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 삼귀 묘소 아래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가계]
정문예(鄭文裔)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 鄭氏) 후손이다. 고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판도판서(奉翊大夫行版圖判書)인 정림(鄭林), 증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 조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인데 이때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아버지는 사정(司正) 정위(鄭瑋)이며,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로 동정(同正) 서속(徐俗)의 딸이다. 부인 영양 이씨(永陽 李氏)는 생원(生員) 이현실(李玄實)의 딸로서 슬하에 5남을 두니, 사성(司成) 정종소(鄭從韶)와 정귀소(鄭歸韶), 학유(學諭) 정지소(鄭至韶), 좌랑(佐郞) 정치소(鄭致韶)와 정의소(鄭依韶)이다.
[활동 사항]
정문예는 1402년(태종 2)에 생원(生員)으로 영산유학교도(靈山儒學敎導)를 역임한 뒤 전촌(錢村)[영천시 도동]에서 처가 동네인 영천시 대전동(大田洞)으로 이사하여 제일봉 아래 살았다. 아들, 손자 양 대(代)에 문과에서 9명의 급제자가 나와 가문을 부흥시키고 빛냈다.
[묘소]
정문예의 묘소는 영천시 오미동(五味洞) 삼귀(三歸)마을에 있으며, 9대손 정석주(鄭碩冑)가 찬(撰)한 묘표(墓表)가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묘소 아래 묘재(墓齋)인 삼귀재(三歸齋)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