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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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安性 |
이칭/별칭 | 중경(重卿),고은(皐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전안성(全安性)의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중경(重卿), 호는 고은(皐隱)이다. 고조는 참봉(參奉) 전언(全彦)이며, 증조는 전희상(全希祥), 조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전몽룡(全夢龍)이다.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아버지 전삼달(全三達)로 인해 3대가 모두 추증을 받았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광주 노씨(光州 盧氏)로 중추(中樞) 노준(盧遵)의 딸이고, 둘째어머니 정부인(貞夫人) 영양 최씨(永陽 崔氏)는 선무원종공신으로 이조참판인 최기남(崔起南)의 딸이며, 셋째어머니는 함안 조씨(咸安 趙氏)로 진사(進士) 조충양(趙忠良)의 딸이다.
전안성의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파평 윤씨(坡平 尹氏)로 사과(司果) 윤호우(尹好雨)의 딸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니 아들은 선략장군(宣略將軍) 전이돈(全爾墩)과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전이보(全爾堡)이며, 사위는 예천인(醴泉人) 권백령(權百齡)과 반남인(潘南人) 박진표(朴震豹), 팔거인(八莒人)[경상북도 칠곡군] 도계(都啓)이다.
[활동 사항]
전안성[1597~1669]은 1597년(선조 30)에 태어났다. 1621년(광해군 13) 군(軍)에서 순시 발탁할 때 천거되어 부위(副尉)가 되고,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참군겸봉사(訓練院參軍兼奉事)를 역임했다.
1646년(인조 24) 평산(平山)·하동(河東)·울산(蔚山)을 거쳐 천성보수군만호(天城堡水軍萬戶)에 이르러 해변에 성을 축조하고 병기를 수리하며 군사를 정예군으로 훈련시켜 7년간 변방 방어에 진력을 다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에 효종(孝宗)은 상으로 군관표리일습(軍官表裏一襲)을 하사하였다. 1669년 73세를 일기로 전안성이 세상을 뜨자 나라에서 병조참의(兵曹參議)의 증직을 내렸다.
[묘소]
전안성의 묘소는 영천시 남쪽 고읍평백산(古邑坪白山)에 자향(子向)으로 있으며, 종후손 전극복(全克復)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