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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053
한자 鄭仁槩
이칭/별칭 원직(元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순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2년 11월 5일연표보기 - 정인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90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정인개 사망
묘소|단소 정인개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서당리 지도보기
성격 무인
성별
본관 영일
대표 관직 참봉(參奉)|주부(主簿)|감찰(監察)|정의 현감(旌義縣監)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무인.

[가계]

정인개(鄭仁槩)의 본관은 영일. 자는 원직(元直)이며, 1522년(중종 17) 11월 5일에 태어나 1590년(선조 23) 12월 26일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영산유학교도(靈山儒學敎導)를 지낸 정문예(鄭文裔)이고, 증조는 좌랑(佐郞)을 지낸 정치소(鄭致韶)이며, 조부는 생원(生員) 정이상(鄭以常)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 정굉(鄭硡)이며, 어머니는 숙인(淑人) 합천 주씨(陜川周氏)로 주면(周冕)의 딸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영양 이씨(永陽李氏)[영천 이씨]로 훈도(訓導) 이희(李熙)의 딸로 2남을 두니 정결(鄭潔)과 정담(鄭湛)이다.

[활동 사항]

정인개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니, 어머니께서 엄하게 가르치며 말하기를 “반드시 착한 사우로 하여금 너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공이 말의 뜻을 이해하여 공경히 따르고 받들어 섬기었다.

별시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를 살았고 복(服)이 끝난 후 벼슬길에 나아가 참봉(參奉)·주부(主簿)·감찰(監察)·정의 현감(旌義縣監)을 역임하였다. 나중에는 아버지 묘소 아래 금오정사(金鰲精舍)와 영수암(靈水庵)을 지어 우러러 사모(思慕)하였다.

[묘소]

정인개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서당리 냉정(冷井)에 있으며, 월성(月城) 손후익(孫厚翼)의 갈문(碣文)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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