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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36
한자 山泉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세기 - 산천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7년 - 산천정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3년 - 산청정에 이호대가 기문 기록
현 소재지 산천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이익공|홑처마|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 시대 학자 정봉휴(鄭鳳休)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정봉휴의 본관은 영일. 호는 곡구(谷口)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로 매산 정중기의 증손자이며, 숙제(叔弟)인 향양정 정귀휴(鄭龜休)와 가깝게 지냈다. 매곡마을에 정자를 건립하고 장수(藏修)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매곡마을은 영천의 3대 양택지로 손꼽히는 길지로 마을에는 영천 매산고택 및 산수정, 향양정이 있다.

[위치]

산천정은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2리 매곡마을에 있다. 매곡마을은 임고면소재지에서 영천댐 방면으로 가다보면 댐 제당 직전 좌측에 있는 삼매리의 가장 안쪽 마을이다.

[변천]

산천정은 정봉휴가 삼매리 매곡마을에 자신의 살림집 뒤에 강학을 위해 작은 정자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이 정자가 무너져 터만 남게 된 것을 후손 정동헌·정돈식·정극식 등이 힘을 모아 개천 남쪽에 새 터를 닦아 1967년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정귀휴가 아우인 점을 볼 때 1884년(고종 21)에 건립된 향양정 보다 앞선 시기에 건립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기문은 건립 후 6년 뒤인 1973년에 완산인(完山人) 이호대(李好大)가 기록했다.

[형태]

산천정은 전체적으로 인근의 향양정과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경사진 산 사면을 이용해 방형의 토석 담을 두르고 누각 형식의 정자를 남서향으로 독립 배치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건물이다. 우측 방 배면에는 벽장을 두고 나머지는 쪽마루를 설치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퇴 가장자리에는 계자각 난간을 둘러 헌함을 설치하고 그 하부는 누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청방 간에 사분합문을 달아 공간 확장을 꾀했고 대청 뒤로는 쌍여닫이 판창을 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방의 전면과 측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구조는 누마루 부분에 석주를 세워 강우의 피해를 없앴다. 누 상부는 전체를 두리기둥으로 세우고 허접한 이익공 양식으로 결구해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모서리 서까래는 마족연으로 처리했다.

[현황]

산천정 정면 어칸 상부에는 ‘산천정(山泉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대청 후면 상부에 ‘산천정사(山泉精舍)’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산천정은 건립 당시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기문에 의하면 집 뒤에 작은 정자를 건립했다는 것으로 볼 때 현재의 정자 보다 그 규모가 작았던 것이 짐작된다. 현재의 산천정은 전체적으로 인근의 향양정과 유사한 모습을 취했으나 시대적 변화에 따른 구조적 특징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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