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리에 있는 제주 4·3 사건 유적. 제주 4·3 사건은 1949년 3월 제주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의 귀순작전 등으로 무장대 세력은 급속히 약화된다. 또한 6월 무장대 총책임자 이덕구가 피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잔여 무장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주민납치 등으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마을습격 등을 감행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위치한 제주4·3사건 관련 유적. 제주4·3사건은 1949년 3월 제주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의 귀순작전 등으로 무장대 세력이 급속히 약화된다. 또한 6월 무장대 총책임자 이덕구가 피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잔여 무장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주민납치 등으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마을습격 등을 감행하기도 했다...
1948년 4월 3일 이후 7년 동안 서귀포시를 포함한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광복 직후의 당시 제주 사회는 6만여 명의 귀환 인구 실직 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의 창궐, 극심한 흉년 등으로 겹친 악재와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 경찰의 군정 경찰로의 변신, 군정 관리의 모리행위 등이 큰 사회문제로 부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4·3사건 관련 유적. 제주 4·3사건은 1949년 3월 제주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의 귀순작전 등으로 무장대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고, 6월 무장대 총책임자 이덕구가 피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잔여 무장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주민납치 등으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마을습격 등을 감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