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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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공주지구 조치원성당 소속 공소. 공소는 천주교에서 일반적으로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를 의미하지만 간혹 공소 신자들의 모임 장소인 강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기 지역에서 천주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곳은 동면 노송리의 노리미 마을이었다. 1866년에 있은 교난[병인박해]에 강의관이라는 사람이 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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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노송리는 마을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이 분포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는 노송(老松)이 많아 놀뫼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노산(老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노송리에는 마근터, 노리미, 강당, 움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마근터마을은 노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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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준을 시조로 하고 배천의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하고 배유(裵裕)[1403~1472]를 파조로 하는 성산배씨는 배천의(裵天義)[1584~1654]가 16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성산배씨는 성주배씨(星州裵氏)라고도 한다. 시조는 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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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의 약수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약사골」 설화는 고려시대 연동면 노송리에 있던 강당[서당]의 서생인 박천석이 남편을 잃은 여인을 겁탈하려 하였고, 저항하던 여인이 자결하자 이후 약수터의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지명설화이다.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연기군지』에는 최문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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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세거한 경주김씨 상촌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노산은 경주김씨 상촌공파(桑村公派) 집성촌이다. 노송리는 1구와 2구로 나뉜다. 노송1구의 중심 마을은 노리미와 웅동이며, 노송2구의 중심 마을은 강당이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노리미와 웅동에 살고 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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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세거한 경주김씨 상촌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노산은 경주김씨 상촌공파(桑村公派) 집성촌이다. 노송리는 1구와 2구로 나뉜다. 노송1구의 중심 마을은 노리미와 웅동이며, 노송2구의 중심 마을은 강당이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노리미와 웅동에 살고 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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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한양조씨는 조우규(趙禹圭)의 딸로, 결성장씨 가문에 출가하였다. 남편 장이상은 판윤 장전(張詮)의 10세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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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교. 세종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866년 병인대교난을 피하여 강만이라는 사람이 아미산이 있는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사곡리에 숨어 들어와 살 때부터로 볼 수 있다. 강내면 사곡리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와 이웃 마을로 아미산의 북쪽과 남쪽으로 인접하여 있었다. 강만은 대원군 실각 후 전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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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를 시조로 하고 장경지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흥성장씨는 흥덕장씨라고도 불리며, 감사공파의 장경지가 15세기 초에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입향하였다. 와촌리의 번암동은 한때 ‘장씨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흥성장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도 거주하고 있다. 흥성장씨(興城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