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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촉성논산협의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500
한자 獨立促成論山協議會
영어의미역 Nonsan Council for Urging Independence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치단체
설립연도/일시 1946년 1월 10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46년 하반기연표보기
설립자 윤형중(尹珩重)을 비롯한 10여 명

[정의]

1946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 단체.

[설립목적]

독립촉성논산협의회는 해방 후 난립하던 정당과 정치단체, 사회단체들의 분열을 극복하고 우익 세력의 공동 투쟁과 노선을 취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변천]

1945년 10월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이 정치 세력의 단결과 연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이에 따라 논산에서도 1946년 1월 윤형중(尹珩重)을 비롯한 10여 명이 논산제이국민학교에서 지부 성격을 띤 독립촉성논산협의회를 결성했다. 1946년 3월 당시 회장은 윤형중, 부회장은 육완국(陸完國), 총무부장은 심상은(沈相殷), 선전부장은 박창래(朴昌來), 조직부장은 윤정(尹政)이었으며, 회원은 180여 명이었다.

독립촉성논산협의회의 결성에 앞서 1945년 12월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1946년 2월 8일 독립촉성중앙협의회는 김구를 중심으로 한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를 결성했다. 1946년 1월 결성된 독립촉성논산협의회는 계속 활동하다가 1946년 하반기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활동사항]

독립촉성논산협의회는 우익 세력의 연합과 강연회, 집회 등을 개최하여 신탁통치 반대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 일환으로 1946년 5월 26일 논산제이국민학교에서 임시정부 선전부장 엄항섭(嚴恒燮), 전국부녀회장 박승호(朴承浩)가 참석한 가운데 독립전취국민대회를 개최했으며, 동년 6월 3일에는 조소앙(趙素昻)을 초청하여 시국 강연회를 개최했다.

1947년 6월 논산소방대원이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회원이었던 박창식(朴昌植)과 김종갑(金鍾甲)을 비롯한 수 명은 소방대원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회원 약 백여 명을 규합하여 논산면 부인리에 있는 가옥 20여 채를 파괴하고 주민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이 테러로 경상자 8명과 중상자 3명이 발생했는데, 그중에는 임신부와 6세 미만의 여아도 포함되었다. 이에 민주주의민족전선 논산군위원회는 당국에 진상을 보고하는 동시에 정당한 조치를 촉구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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