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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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在九 |
영어공식명칭 | Ha Jaegu |
이칭/별칭 | 치백,위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은영 |
출생 시기/일시 | 1832년 - 하재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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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61년 - 하재구, 식년시 진사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911년 8월 - 하재구 사망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
거주|이주지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
묘소|단소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 남산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진양 |
대표 관직|경력 | 친군남영군사마|용양위부사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인.
[가계]
하재구(河在九)[1832~1911]는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우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백(致伯), 호는 위수(渭叟)이다.
고조부는 하한윤(河漢潤), 증조부는 하성원(河聖源), 조부는 하필명(河必明)[1783~1841], 부친은 진사(進士) 하석문(河錫文)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정효맹(鄭孝孟)의 딸, 처는 정선전씨(旌善全氏)이다.
[활동 사항]
하재구는 12~13세 때 이미 사서오경을 습득하고 과거에 필요한 잡문도 두루 익혔다. 20살 때 서울로 올라가 많은 사람을 사귀면서 문정공(文貞公) 김세균(金世均)[1812~1879]을 만났으며, 1861년(철종 12) 식년시(式年試)[조선시대에 3년마다 시행된 정기 과거] 진사 2등 10위로 합격하였다. 김세균의 양자 김명진(金明鎭)[1840~?]의 천거로 효력부위(效力副尉)가 되었으며, 친군남영군사마(親軍南營軍司馬)를 거쳐 통훈대부(通訓大夫)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 승직하였다. 김명진은 중앙직으로 들어오면서 하재구를 등용하려 하였으나 도중에 김명진이 사망하고 하재구 또한 부친상을 당하여 성사되지 않았다. 1903년에 고종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제수(除授)[옛 관직을 없애고 새 관직을 내리던 일]하고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만년에 소계문(疏啓文)[임금에게 올리는 상소와 장계의 글을 아우르는 말]을 대필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 주며 여생을 보냈다. 1911년 8월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위수선생문집(渭叟先生文集)』이 남아 있다.
[묘소]
함양군 유림면 이은리 화장산(花長山)[586m] 아래 남산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