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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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貴世 |
영어공식명칭 | Jeong Gwise |
이칭/별칭 | 영지(榮之),여화(汝華),금강(錦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가계]
정귀세(鄭貴世)[?~1592]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영지(榮之), 여화(汝華)이고 호는 금강(錦岡)이다. 대사간(大司諫) 정계도(鄭啓道)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정로위(定虜衛) 정필례(鄭必禮)이다.
[활동 사항]
정귀세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효성스럽고 힘이 세었다. 1590년(선조 23)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의 관직에 올랐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의(擧義)한 고경명 휘하로 들어갔다. 정귀세는 1592년 6월 10일에 함평의 전(前) 주부 박응주(朴應柱), 영광의 이인우(李仁佑), 옥주의 전용관(田用灌), 정읍의 김봉학(金奉鶴), 조식(趙軾) 등과 함께 가동(家僮) 및 향병(鄕兵)을 거느리고 의병에 동참하였다. 1592년 8월 금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공격할 때 참전하여 온 힘을 다해 싸웠으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귀세는 1605년(선조 38)에 임진왜란 때의 공을 인정받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금산 종용사(從容祠)[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