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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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南路-[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청우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48년 - 김준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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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지역 | 금남로 - 광주광역시 동구 |
성격 | 시 |
작가 | 김준태 |
[정의]
전라남도 광주의 역사에 있어서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남로를 배경으로 김준태가 지은 시.
[개설]
김준태(金準泰)[1948~]는 시 「금남로 사랑」에서 금남로를 사랑과 평화, 그리고 조화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거리로 묘사하면서 '어머니[자연]'에 비견될 만한 풍요로움과 조화로움의 거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구성]
「금남로 사랑」은 1연 25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금남로는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군호, '금남군(錦南君)'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주요 장소[금남로 1가의 옛 전남도청~옛 광주은행 사거리 구간.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이기도 하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여 영향력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주의 중심지[충장로와 예술의 거리 등의 통로]다. 1980년 이후 금남로는 대로(大路)이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현실적이면서도 상징적 의미를 지녔던 옛 전남도청[현 아시아문화전당]이 자리 잡고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집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준태는 금남로의 이런 점을 「금남로 사랑」에서 강조하고 있다. 김준태는 금남로를 '사랑'이 넘치는 거리,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시인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 거리, 그것이 금남로다. 이는 금남로가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로서만이 아닌, 자유와 평화와 민주·인권을 외치기 위해 모이고, 또 그러한 마음들을 서로 확인하는 거리로 지금껏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준태는 한 가족으로 표상되는 광주 시민의 군상["어린애와"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누이와"]이 서로 "나란히" 함께 일하며, 부대끼며 살아가는 거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금남로는 어머니의 젖가슴이었다"라고 하면서 금남로를 포용하는 '어머니[자연]라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시에서 '광주'는 곧 금남로 그 자체이자 '어머니[자연]'가 된다.
[특징]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금남로는 역사의 비극이 펼쳐졌던 장소이었지만, 동시에 그로 인한 고통을 서로 보듬어주던 사람들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김준태의 「금남로 사랑」은 그러한 금남로의 면모를 '가족'이라는 관계를 상징적으로 들여옴으로써 시적 설득력을 확보한다. 1980년, 광주의 5월은 사회에 자신을 기입하지 못하였던 무산자(無産者)들도 실로 모두 하나의 공동체, 즉 '가족'을 이루었던 '사랑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김준태는 「금남로 사랑」에서 그러한 국면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김준태의 다른 시들처럼, 「금남로 사랑」 또한 관습화된 상징과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기에 다소 평면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남로가 광주 시민에게 주는 장소적 의미를 잘 포착하였으며, 힘 있고 긍정적인 어조를 견지함으로써 금남로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거리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예시하는 거리임을 설득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