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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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鄕校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107번길 5[구동 22-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한백 |
건립 시기/일시 | 13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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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488년 - 광주향교 현재 자리로 이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597년 - 광주향교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00년 - 광주향교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2월 25일![]() |
현 소재지 | 광주향교 -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107번길 5[구동 22-3]![]() |
원소재지 | 광주향교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일원![]() |
성격 | 향교 |
양식 | 맞배지붕[대성전|명륜당]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8칸[명륜당] |
측면 칸수 | 3칸[대성전]|2칸[명륜당] |
문화재 지정 번호 |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광주 지역 중등교육 및 유교 교화를 담당하였던 기관.
광주향교(光州鄕校)는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광주 지역의 관학(官學) 중심 중등교육과 지역민 교육을 담당하고, 공자와 여러 유학자들의 제사를 지내는 등 성리학과 유학 관련 일을 진행하였던 곳이다.
광주향교는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107번길 5[구동 22-3]에 있다.
1398년(태조 7) 현재 동구 지산동으로 추정되는 무등산 장원봉 아래에 건립되었다. 산짐승이 많이 나타나서 대인동으로 옮기고, 이후 수해(水害)로 1488년(성종 19)에 당시 광주현감이었던 권수평(權守平)이 현재 자리로 옮겼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후 1600년(선조 33) 다시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으며, 1985년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광주향교는 향교의 기본적인 건물 배치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외삼문(外三門)과 비각(碑閣)이 가장 바깥에 있으며, 외삼문 안에는 강당 건물인 명륜당(明倫堂)과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다. 명륜당 뒤에는 내삼문(內三門)이 있고, 그 뒤에 동무(東廡), 서무(西廡)가 있고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정면 8칸 측면 2칸의 구조이며 맞배지붕이다. 이 외에도 문회재(文會齋), 양사재(養士齋), 유림회관(儒林會館), 충효교육관(忠孝敎育館)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조 6현(宋朝六賢)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소옹(邵雍), 장재(張載), 주희(朱熹)], 동방 18현(東方十八賢)[최치원(崔致遠), 설총(薛聰), 안향(安珦), 정몽주(鄭夢周),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이언적(李彦迪), 조광조(趙光祖), 김인후(金麟厚), 이황(李滉), 성혼(成渾), 이이(李珥), 조헌(朝憲),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김집(金集), 박세채(朴世采), 송준길(宋浚吉)]을 모신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첫 번째 정(丁)이 되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제(釋奠祭)를 지낸다.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있어 관리를 하고 있다. 경서류와 문집류 189종 306책이 있으며, 이 중 『관안(官案)』과 『광주유림안(光州儒林案)』이 조선시대 광주 지역 연구의 기초 자료이다. 1985년 2월 25일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광주 지역 관학과 유학 보급 활동의 중심지이다. 조선시대 광주 지역 관학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현재까지 석전제를 지내며 유학 전통을 잇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