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대교리에서 김종서의 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단종을 지키려는 김종서 장군을 수양대군이 모해하였다. 그러자 김종서의 애마가 그의 다리 하나를 물고 고향인 공주 대교리로 가져왔다. 애마는 지쳐서 죽고 마을 사람들은 이 다리 하나로 김종서의 무덤을 만들었다. 「한다리 전설」은 『공주민속』(공주문화원, 1992)에 실려 있는데...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문신. 순천김씨는 원래 순천에 세거하였던 성씨였으나 김종서의 조부 김태영(金台泳) 때에 이르러 공주에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과 『단종실록(端宗實錄)』의 여러 기사를 통해 공주에 김종서의 집과 농장이 있었으며 선대의 묘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명장인 절재(...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태영(金台泳)이고, 아버지는 공주에서 도총제(都摠制)를 지낸 김추(金錘)이며, 어머니는 성주 배씨로 대사헌 배규(裵規)의 딸이다.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1405년(태종 5)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김종서(金宗瑞)[1383~1453]는 여러...
내산리에 언제부터 허씨들이 살았는지는 자료상의 한계로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그나마 당대 최고의 대금 연주자로 알려진 허억봉과 조선 최고의 침의로 공신의 반열에 오른 허임에 대한 사료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그 내력의 편린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허임의 저술인 『침구경험방』의 서문을 살펴보면 말미에...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월인석보』를 찍어내던 조선 중기의 판목. 『월인석보』는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을 합하여 1459년(세조 5)에 편찬한 불경 언해서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일대기라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1446년(세종 28)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이 불교...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애일당(愛日堂). 판중추부사 문정공 정이오(鄭以吾)[1347~1430]의 아들이다. 그러나 정분에게 자손이 없어 종가에 봉사손(奉祀孫)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 자신의 장자인 정지산(鄭之産)을 그 종숙(從叔)인 정분의 계자(系子)로 입양시켜 대를 잇게 했다. 진주정씨가 이곳 호계리에 정착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