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암리의 교육 생활권은 크게 공주 및 대전권으로 볼 수 있다. 학교로는 유일하게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518-1번지에 있는 공립초등학교인 반포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공암의 이웃동네인 000에는 반포중학교가 위치하기 때문에 공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곳으로 중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근처에 없어 공주 시내나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학교로 분산하여 통학...
-
내산리는 현재까지 12명의 전·현직 이장들이 마을을 위해 헌신해 오고 있다. 1965년도에 초대 이장을 역임했던 신길상 이장부터 강태성, 이병주, 이병화, 임남순, 이병한, 임철순, 이병상, 정성진, 정해하, 허삼랑, 그리고 현재 김승태 이장까지 모두 내산리를 이끌어 온 숨은 공신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당시에 성행했던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마을의 숙원 사업이었던...
-
공암리 주민들의 대표자가 되어 마을일을 보아온 역대이장님을 공암리 마을사람들은 잊지 않는다. 바로 공암리 마을회관 2층의 한 면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공암리 이장단들은 자신들이 이장이 되었을 때 그리고 이장을 역임하고 있지 않은 때에도 마을의 중대사를 챙기고 농사와 마을의 공동 작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기에 때로는 마을의 어른으...
-
공암 1리를 찾아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농촌풍경이 펼쳐져 있다. 특히 공주시내에서 공암으로 가는 강변도로는 금강과 함께 달릴 수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다. 공암에 가려면 자가용이 아니라면 모두 버스만을 이용해야 하는데 시내버스로는 공주시내에서는 2, 5, 21번을 타고 15분, 대전 유성에서는 5번을 타고 10분이다. 또한 대전과 공주를 오가는 직행버스도 이곳에...
-
내산리는 무성산 자락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에 위치하고 있다. 입지 조건 상으로 마을이 분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철에는 상당히 무덥게 느껴진다. 그런 내산리 주민들에게 여름철에 그늘이 되어 주면서 자연스레 쉼터 노릇을 해 주는 것이 바로 둥구나무이다. 둥구나무는 내산리 마을회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웅진교육박물관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
-
내산리는 행정구역 상 공주시 우성면에 속해 있는 31개 리(里) 중의 하나다. 우성면에서는 면 주도 하에 1년에 한 번씩 각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해서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에 치러진 체육대회는 55회째로, 2007년 8월 15일 제62주년 광복절을 기념해서 ‘우성면민 화합의 한마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공주시 우성면 방흥리 20에 위치한 우성중학교에...
-
사람은 누구나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각각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치르고 난 후에 죽음을 맞이하여 땅 속으로 묻히게 된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적 형태를 지니고 있었고 거기에서 전해오는 관혼상제를 중요시하는 생활상이 펼쳐져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관혼상제의 의례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
과거 공암리의 경제 생활권은 1950년대 공암장이 섰던 때를 제외하면 마을과 인접한 공주장이나 유성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공암장이 섰던 곳은 현재 보건소가 있는 자리로, 4일장과 9일장이 열렸다. 이후 공주·유성의 상설 시장과 대형 마트가 생기고, 1997년 마티터널이 완공되어 개통됨에 따라 공주와 대전으로의 이동 거리가 짧아지면서 생활소비권이 빠른 속도로 확대 되었다. 현재의...
-
반포면사무소 건너편에 위치한 소방서의 뒤편으로 대전~공주 간 32번 국도의 보행자 전용 육교의 아래쪽에 부안임씨[1886~1935] 정려가 있다. 정려(旌閭)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충신(忠臣)·효자(孝子)·열녀(烈女)·열부(烈婦)등의 행적을 기리고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한 것을 말한다. 정려에는 충·효·열 중 한 글자...
-
동원 1리의 이장을 맡아온 역대 이장들은 마을을 봉사하고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른 마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원골의 이장들은 임기는 보통 2년이지만, 사정에 따라 연임하기도 하였다. 신풍면사무소나 동원 1리 마을회관 등에는 역대 이장에 관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동원 1리 이장을 맡고 있는 조학묵 이장으로부터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원리...
-
마을 운영을 담당하는 것은 원골마을의 ‘동계’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관련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동계의 명칭은 ‘원골동계’이지만, ‘원골’이 동원 1리를 대표하는 지명이므로 동원 1리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이 가입 대상이다. 마을에 새로 이사를 오게 되면 돈이나 쌀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한다. 동계에서 하는 일은 마을 질서를 바로 잡는 마을의 대표격인 조직이다. 동계는 마...
-
동원1리는 마을의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마을 앞에 넓게 펼쳐진 은구들을 기반으로 풍성한 농작물과 최근에는 표고버섯, 홍고추, 축산물(돼지) 등을 생산하여 소득을 높이고 있다. 특히 표고버섯과 홍고추는 1995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작목반이 구성되었고, 저온저장고과 농산물 집하장, 농기계보관창고 등의 시설이 생겼다. 은구들에서 재배되는 벼는 원골마을의 특산물인...
-
공암리의 주업도 농업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농업의 경영 형태가 인력 위주였다. 소를 이용한 논·밭갈이와 손으로 하는 모내기에 낫으로 농작물을 수확하고 지게를 운반 수단으로 삼았으며 벼를 탈곡할 때에는 홀태(보리, 밀, 조, 벼 등을 홅을 때 사용하는 기구) 또는 탈곡기를 이용한 노동집약적 농사 형태였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농촌 입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