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 있는 동학의 기포지. 1894년(고종 31)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군수 조병갑을 축출하고 백산 등지에 진을 치고 머물렀으나, 후임 군수 박원명의 설득으로 3월 초에 해산을 하였다. 그러나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봉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해지자 무장으로 피신하였던 전봉준 등의 농민군 지도부는 3월 16일경부터 무...
-
지금까지 우리는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사람들만을 기억해왔다. 하지만 이들 세 명에 의해 주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들과 함께 했던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동학농민혁명은 가능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전봉준과 함께했던 이름 없는 농민군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를 뿐 아주 많은 사람...
-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인물이나 사건 등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만든 탑. 1. 동학 농민 혁명 기포 기념탑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은 조선 후기 봉건 사회의 모순에 대한 저항과 외세의 침탈 행위에 대항하여 보국안민과 척양·척왜 등을 주창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일어난 농민 항쟁이다. 이는 독일의 농민 전쟁, 중국의 태평천국, 인도의 세포이의...
-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 사는 전윤오[1938년생] 씨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은 역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수마을 역병 이야기는 정말로 한 마을에 불어 닥친 엄청난 불행이자,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어릴 적에 그는 그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내가 열네댓 살 먹었을 때 들었던 것 같혀. 당시에 여러 곳에서 온 동학군들이 많이 모였던...
-
여시뫼봉은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 있는 왕제산의 다른 이름이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의 현장인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서 직선거리로 약 1㎞ 가량 떨어진 이곳은 높이가 152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사방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서해안의 물길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내륙으로부터 들어오는 관군의 움직임을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무장기포를...
-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에서 출발하여 구암중앙교회를 지나면 길 건너에 석교리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석교리’라고 쓰여 있는 크고 굵은 글씨와 그 아래 ‘동촌, 창촌’이라 쓰여 있는 표지석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큰 마을이 나온다. 마을 인가를 몇 채 지나면 커다란 당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운치 있는 나무를 보면서 여름...
-
음력 3월 20일을 전후해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가 열린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무장기포를 기념하는 행사로서, 올해[2009년]는 4월 25일에 기념제가 열렸다. 전날까지도 아주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25일 오전부터 날씨가 굉장히 쌀쌀해져서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에 도착했을 때는 차가운 바람과 검은 구름이 하늘 곳...
-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운동으로 민족ㆍ민중 운동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 동학농민혁명의 기포지이다. 고부에서 싹튼 농민 봉기의 불씨가 이 마을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것이다. 1894년 3월 20일[음력] 구수마을에 모인 동학 농민군들은 만천하에 ‘창의 포고문’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구수마을은 농민 봉기가 혁명으로 전개된 역사적인 곳이...
-
농사일이 모두 끝난 늦가을부터 겨울이면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할머니들은 매일같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그리하여 구수내가 동학농민혁명의 기포지 마을이기 때문에 관련 이야기 하나쯤은 들어 있을 법도 한데, 동학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동학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지 오래된 사건이라서 그랬을까? 참으로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조르고 졸라...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군의 역사. 고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6, 잡지 제5 무량군편에서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을 신라 경덕왕 때 고창현(高敞縣)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고창군은 신라 때에 고창현으로 무령군이 관할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현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
-
에~ 에헤~~에~~ 이~~히히~아~~~오~~~산 에~ 에헤~~에~~ 이~~히히~아~~~오~~~산 에~~~ 히히히여~~~~어~ 서른두 명 유대군들[상여꾼들] 내 말 잠깐 들어 주오 먼데 양반들 듣기 좋고 가깐데 양반들 보기나 좋게 곱게 곱게 운상헙시다 그려 관암~~ 보~~살~~~ 에~~~ 히히히여~~~~어~ 엊그저께 성튼 몸이 오늘날로 병이 들어 약탕관을 옆에 놓고 인삼녹용을 다렸은...
-
무장기포는 1894년 3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되었다. 당시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리[현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는 수천 명의 동학 농민군이 모였는데, 이들은 죽창을 만들고 무기와 식량을 확보한 뒤 대오를 정비하였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마침내 3월 20일 이곳에서 창의문을 낭독하고 기포하였다. 무장기포 직전 무장현 일대는 동학의 교세가 대단히 컸다. 동학의 교세는 전라도 동...
-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이장 최대기 씨는 2009년 2월 9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당시 최대기 씨 어머니는 백수[100세]에서 딱 한 살 모자란 아흔아홉 살이었다. 그리고 생전에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해 모신 공으로 최대기 씨는 2007년 5월 9일 대한노인회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 어머니는 고창 고을 원님의 ‘딸의 딸’로 태어났다고 한다. 정식 학교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