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고등보통학교
-
김경식이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 교육의 역사를 통괄하면서 고창 지역에서의 교육 활동을 교육사적으로 접근하여 연구한 책. 1994년 당시 고창군수였던 양규장이 고창 지역 인물이나 전통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연구를 독려하면서 ‘고창의 유학과 교육’을 기획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1차년도 연구 결과로 간행된 것이 『고창의 교육』이다. 1권 1책으로, 총 469쪽이다. 표제는 ‘고창의 교...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창 출신의 관리, 교육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87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강대식은 1903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냈으며, 1905년에는 6품 승훈랑(承訓郞), 정3품 비서감(秘書監)으로 승차하였다. 한일합방 후 지금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로 물러난 뒤 재산을 일구어 소작인을 1,057명이나 거느릴 정도의 대...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이온재(而溫齋)이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경상좌수사를 역임한 물기재(勿欺齋) 강응환(姜膺煥)의 6세손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태어났다. 강대직은 1914년 독립의군부 종사관의 칙지(勅旨)를 받고, 이때부터 비밀 결사 독립운동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로 상해...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고등 보통 교육과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는 교육 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나, 일반계와 실업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종합 고등학교도 있다. 그 외 특수 목적 고등학교인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체육고등학교...
-
1927년~1930년 고창 지역의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고창고등보통학교 항일 운동에는 독서회 사건과 사회주의 유형의 S당 사건, 일본인 교원 배척 사건, 6·10만세운동 사건 등이 있다. 일본인 교원 배척 사건은 일본인 교사의 조선인에 대한 민족 차별 및 교수의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다. 독서회 사건은 일제의 황민화 정책의 반발에서 비롯되었는데, 결사 활동...
-
1910년대에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애국 계몽 및 항일 운동 단체. 고창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의 제1차 봉기 지역이자 그 지도자인 전봉준의 태생지이다. 당시 고창의 많은 청년들이 동학 농민 혁명에 가담했으며 희생자는 1만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여기에 그 연장선이었던 1906~1909년의 의병 항쟁 기간에도 많은 청년들이 희생되어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됨으...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고창문화원 부설 향토 사료관. 고창향토사료관은 지역 문화에 관심을 갖는 지역민이나 연구자들을 위해 고창에 대한 역사의 고증 자료 및 문화·예술·민속·유물·유품 자료를 수집·보관·전시하고, 향토사를 조사·연구하여 교육 자료로 제공함으로써 향토 의식을 함양하고자 1999년 12월 27일 착공하여 2000년 8월 28일 완공하였다. 대지 면적 1,6...
-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는 일이다. 근본적으로 상대편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서 가치 있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하는 사회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이란 교사가 학교라고 하는 정비된 기관에서 계획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학교 건축물. 고창고등보통학교는 1918년 4월 1일 오산학당의 설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설립자인 일본인 마스도미 야스자에몬[枡富安左衛門]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장로였다. 마스도미 야스자에몬이 1912년 11월 21일에 세운 흥덕학당은 1918년 오산학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9년 4월에는 오산학당을 폐지하고, 사립 오산고...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근대 교육은 근대 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 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 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916년 6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349번지에서 김영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방수는 고창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때 잠시 연극을 했다가, 1942년 6월부터 다음 해 8월경까지 연극배우로 활동하였다. 당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민족극(民族劇)을 준비하였으며, 전라도의 고창과 장성 일대에서 독립운동...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일우(一愚)이다. 188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81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김준희(金俊禧)이다. 김승옥은 18세 되던 1907년에 고창 지역에 있는 한문 사숙(私塾)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고창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하다 고종 황제의 국상을 맞아 고창...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광산(光山), 190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김영동은 1921년 정읍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부터 북간도, 연길, 용정,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후 출옥하였다. 만주 봉천에서 제철제강업과 자동차연료제작소 사업을 하였으며, 그 운영 이익금은 가...
-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종흡은 일본의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종교철학과를 졸업한 후 전주 신흥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교무주임을 맡았다. 그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 명작을 읽어 주기도 했는데,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아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1934년 9월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재직하였고,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부총장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거나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고창 지역 출신으로 국내외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일제의 무단 통치기에 활동한 독립운동의 성격은 주로 무장 성격을 띤 적극적인 항일운동 세력과 3·1운동을 기점으로 만세 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종교가이자 교육자. 마스도미 야스자에몬[枡富安左衛門]은 마스도미 야스자이몽, 또는 승부 장로(枡富長老)라 불리기도 한다. 1880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마스도미 야스자에몬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간장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두 형과 동생을 잃은 마스도미 야스자에몬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장을 경영하려고...
-
전라북도 고창 지역 출신의 문인들에 의해 조직·운영되는 문학 활동을 하는 단체. 고창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 교사·학생·문인들의 혼합 구성체였던 모양문학회의 창립총회가 1959년 2월 15일에 개최되었다. 전국 군 단위에서 처음으로 갖게 된 이 행사에는 고창 군수·윤병하 고창경찰서 서장·이아영 고창교육장·김성식 고창중학교 교장·김영수 고창농협조합장·김판순 삼남일보 사장·유동총 고창군...
-
전라북도 고창 지역 출신의 문인들에 의해 조직·운영되는 문학 활동을 하는 단체. 고창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 교사·학생·문인들의 혼합 구성체였던 모양문학회의 창립총회가 1959년 2월 15일에 개최되었다. 전국 군 단위에서 처음으로 갖게 된 이 행사에는 고창 군수·윤병하 고창경찰서 서장·이아영 고창교육장·김성식 고창중학교 교장·김영수 고창농협조합장·김판순 삼남일보 사장·유동총 고창군...
-
주권 상실기의 부호(富戶)[부잣집]들은 대체로 3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제를 등에 업고 1900년대 초 이후 형성된 친일파 계통의 부호들이다. 둘째, 구한말 지방 지주들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대대로 부를 누리는 부호이다. 셋째, 국내의 자기 지방에서 부를 축적하고 근면과 성실로 일관하며 자신들에게는 구두쇠처럼 검소한 생활을 했던 부호이다. 이들은 인근의 주민들이...
-
주권 상실기의 부호(富戶)[부잣집]들은 대체로 3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제를 등에 업고 1900년대 초 이후 형성된 친일파 계통의 부호들이다. 둘째, 구한말 지방 지주들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대대로 부를 누리는 부호이다. 셋째, 국내의 자기 지방에서 부를 축적하고 근면과 성실로 일관하며 자신들에게는 구두쇠처럼 검소한 생활을 했던 부호이다. 이들은 인근의 주민들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국내에서의 사회주의 움직임은 3·1운동 이후 항일 운동과 민족 재생의 방편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여, 전통적 민족주의 운동에서 벗어나 계급적 사회주의 운동으로 일제에 대항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유학생 중심의 사회주의 조직인 흑도회가 조직된 후 풍뢰회·흑우회·불령사·북성회·북풍회·일월회·무...
-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시인. 서정주(徐廷柱)는 탁월한 언어 감각과 누구도 밟아 보지 못한 토속어로 일군 빼어난 시의 미학을 보여 준 언어의 연금술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문학을, 이승만과 전두환의 독재 시절에는 독재를 미화하는 글을 써 기회주의적 어용 문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당의 아버지 서광한은 무장에서 향시를 보아 장원을 하였고, 1909년 일제가...
-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서예가.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이다. 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齋翁)으로도 불렸다. 1872년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면 사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송태회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써서 6세 때 쓴 「녹괴서실(綠槐書室)」이란 글씨를 중국 원세개(袁世凱)가 보고...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군의 역사. 고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6, 잡지 제5 무량군편에서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을 신라 경덕왕 때 고창현(高敞縣)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고창군은 신라 때에 고창현으로 무령군이 관할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현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오산교회는 ‘주 안에서 든든히 서가는 교회’를 표어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는 교회이다. 지역 사회 복음화와 지역 주민들의 문맹 퇴치를 위해 설립되었다. 1912년 10월 5일 일본인 마스도미 야스자에몬[枡富安左衛門]이 고창군 부안면 오산리에 위치한 자신의 사과 농장 한쪽에 예배...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경안(敬安), 호는 남사(南沙)이다. 1895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흥룡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병문(吳秉文)[1858~1915]으로 부호였다. 오자환(吳滋煥)은 다른 아이들이 한문 서당에 다니고 있을 때 신학문을 배웠다. 성장한 뒤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시급한...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금동은 1909년 9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을 전해들은 유금동은, 고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20일 동급생 유일석(柳日錫)·윤정하(尹鼎夏) 등과 함께 동교생들의 동조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러고는 곧 무기 휴학을 단행하면서 만세...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유진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고창고등보통학교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학부에서 공부를 했다. 동방평론사 편집부장·조선독립협찬회 부위원장·정읍농림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미소공동위원회 1급 통역관, 서울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고 고창...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13년 1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칠성동 29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애국지사 이휴열(李休烈)이다. 이재남은 고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6월 10일 독립 만세 운동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고창고등보통학교 결사 조직인 독서회에 가입하여 학생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녹현(祿賢), 호는 근우(槿愚)이다. 1889년 8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병종(李秉鐘)이다. 이휴열은 1914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백낙윤(白樂允)·이순열(李舜烈)·이석렬(李錫烈)·황상익(黄尙翼)·백관수(白寬洙)·이갑수(李甲洙)·황서구(黄瑞九) 등과 함...
-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역사. 한일합병은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竝呑)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
1942년~1943년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을 투옥한 사건. 일본은 1939년 4월부터 학교의 국어 과목을 폐지하고 신문과 잡지를 점차 폐간하였다. 이에 조선의 한글학자 등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일제의 탄압 정책을 직감하면서 사전 편찬을 서둘러 1942년 4월 원고 일부를 대동출판사에 넘겨 인쇄를 시작하였다. 함흥영생고등여학교(咸興永生高等女學校) 학생 박영옥(朴英玉)이 기차 안에서...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서양화가. 본관은 여양(驪陽)이고, 본명은 진기용(陳錤用)이다.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진우곤(陳宇坤)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진환(陳瓛)은 무장공립보통학교와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한 뒤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미술학교에...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 중심의 민족 운동. 1920년대 전반 고창 지역에는 고창청년회를 비롯한 성송청년회, 무장청년회, 성내청년회, 고수청년수양회 등 모두 7개의 청년 단체가 있었다. 이들 가운데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청년 단체는 고창청년회였으며, 핵심 인물인 홍종철(洪鍾轍), 김승옥(金升玉), 신기초(申基礎), 은규선(殷圭宣), 이휴열(李休烈),...
-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군민의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과 체육 진흥에 관련된 모든 활동. 고창 지역의 체육도 다른 지방과 같이 학교 체육을 근간으로 하여 계승·발전해 왔다. 1919년 고창고등보통학교[고창고보]의 설립 이전에는 새끼줄을 똘똘 말거나, 돼지 오줌통에 공기를 넣어 만든 공으로 마을 주변 공터나 어귀에서 주민들이 편을 갈라 축구 경기를 하곤 하였다. 당시에는...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법조인. 최용관은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에서 태어나,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7년부터 법관으로 활동하며 광주지방법원과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장으로 재직하였다. 1968년부터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장으로 재직하였다. 1971년 5월 25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지구 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 최용관은...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한문으로 된 한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창에서의 한문학은 고려 초에 본이 흥덕인 장연우(張延祐)에서 부터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당시 중앙에 고창 인맥층이 두터워지면서 오세재(吳世才) 등 한문학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에 오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이 약해졌으나 유학이 진보를 거듭하여 김경희(金景熹), 김질(金質), 오희길(吳希吉...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학생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항일 운동. 학생 운동은 전국적으로 볼 때 일관된 조직을 가지고 전개된 운동은 아니었다. 즉, 노동·농민·여성 형평 운동과 같이 전국 단위의 조직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1920년대 초 학생운동은 주로 ‘동맹 휴학’의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이때의 주요 쟁점은 ‘학내 문제 해결’과 ‘일본인 교원 배척’ 등이었다. 그러나 192...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기업가, 사회 활동가.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893년 4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재삼(洪在森)이고, 어머니는 진대기(陳大基)이다. 홍종철은 일제 강점기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 1937년 당시 370여 정보의 땅을 소유한 고창의 거부였다. 정읍국자(井邑麯子) 이사·고창요업주식회사 대표·고창흥산 이사·대흥...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 정부 군자금 모집 호남 지역 본부. 흥동은 성내면의 다른 이름으로, 흥덕현[현 흥덕면] 차동 지역에 있으며, ‘동국을 흥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흥동장학당은 흥동장학회 조직에서 비롯되었다.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육영 장학 사업을 목적으로, 1914년 봄 부안군 내소사에서 백낙윤(白樂允), 이순렬(李舜烈), 이석렬(李...
-
1914년 독립 자금을 마련하고자 백관수·백낙윤 등이 조직한 장학회. 흥동장학회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육영 장학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흥동장학회는 1914년 봄 부안군 내소사에서 백낙윤(白樂允)·이순열(李舜烈)·이석열(李錫烈)·황상익(黃尙翼)·백관수(白寬洙)·이휴열(李休烈)·이갑수(李甲洙)·황서구(黃瑞九) 등이 발기하고, 성내면 중심의 지역 유지 98명의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