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
-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구·최응시·최문회·최문세·최기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경주최씨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경주최씨는 충렬공파(忠烈公派), 문밀공파(文密公派)가 알려져 있다. 경주최씨 고창군 입향조 최구(崔嶇)는 충렬공 최광위(崔光位)의 15대손으로 1570년(선조 3) 전라남도 장성에서 최홍립(崔弘立)의 둘째 아들로 태...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남익(南翊), 호는 여곡(麗谷). 아버지는 참봉 고응진(高應軫)이다. 고덕붕(高德鵬)은 41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 격문을 작성하여 동지를 규합한 뒤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진영이 있는 금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 고경명은 이미 순절한 뒤여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채홍국(蔡弘國) 등...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장사군(長沙君) 김선(金璇)의 후손이다. 김천복(金天福)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 수백 명과 가동(家僮) 수십 명을 산 아래 요새에 매복하여 수천의 적을 습격하여 베었다. 그래서 그곳을 토적동(討賊洞)이라고 이름 하였다. 삼종숙인 병사(兵使) 김수연(金秀淵), 고경명(高敬命)과 더불어 금산전투에 참가하였으며, 후에 진주 촉석루에...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에 있는 조선 후기 맹단. 남당 회맹단은 혈맹단이라고도 하며, 채홍국(蔡弘國) 등 고창 지역 300여 명의 선비들이 구국의 기치로 호남 의병을 창의하고자 삽혈 동맹을 하고 쌓은 맹단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채홍국, 고덕붕(高德鵬), 조익령(曺益齡), 김영년(金永年) 등이 격문을 돌려 창의(倡義)하여 92명의 의사(義士)와 50...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에 있는 김두남·김지남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백양사는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이 된 승지(承旨) 청계(淸溪) 김두남(金斗南), 월재(月齋) 김지남(金志南)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우이다. 김축은 김극일의 현손(玄孫)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임진왜란 당시 80세의 고령임에도 아들 김기경(金起庚)과 아우 김헌(金軒)의...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에 있는 김두남·김지남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백양사는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이 된 승지(承旨) 청계(淸溪) 김두남(金斗南), 월재(月齋) 김지남(金志南)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우이다. 김축은 김극일의 현손(玄孫)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임진왜란 당시 80세의 고령임에도 아들 김기경(金起庚)과 아우 김헌(金軒)의...
-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숙명(淑明). 양평공(襄平公) 오자치(吳自治)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부평부사를 역임한 오세훈(吳世勳)이고, 아버지는 공조참의에 증직된 오언린(吳彦麟)이다. 오희량(吳希亮)은 어려서부터 종조(從祖)할아버지 오겸의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부모에 대한 효도가 깊고 형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하였다. 형 오희철과 한 이불에...
-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광보(光輔), 호는 야수(野叟). 고려 시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경평공(景平公) 채송년(蔡松年)의 후손으로, 예조판서를 역임한 채충경(蔡忠敬)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채치의(蔡致義)이다. 채홍국(蔡弘國)은 1534년(중종 29)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 장성한 후에 흥덕 남당촌으로 이주했다. 천성이 너그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