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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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理志 |
영어공식명칭 | Geographical Records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류명환 |
[정의]
조선시대 경상도 대구 지역을 기록한 지리서.
[개설]
대구 지역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전국 지리지에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 특히 19세기부터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의 도지(道誌)에 대구도호부와 현풍현의 읍지가 수록되었고,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와 『현풍현읍지(玄風縣邑誌)』도 간행되었다. 한편, 대구광역시에 편입된 칠곡군 칠곡읍 지역은 『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 경산군 안심읍 지역은 『하양현읍지(河陽縣邑誌)』, 경산군 서면과 북면 지역은 『경산현읍지(慶山縣邑誌)』에서 관련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제작된 지리지는 국가 통치를 위한 실용적 목적에서 편찬된 관찬 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이 대표적이다.
1425년(세종 7)에 1책으로 편찬된 『경상도지리지』 대구군(大丘郡)에는 건치연혁, 속현, 대천(大川), 강계(疆界), 진산(鎭山), 호구, 고적, 토성(土姓), 공부(貢賦), 토산공물(土産貢物), 약재, 토의(土宜), 대제(大堤) 등이 실려 있다.
1454년(단종 2)에 8권으로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대구군에는 건치연혁, 산천, 강계, 호구와 군정의 수, 성씨, 풍속, 전결(田結), 토의, 토공(土貢), 약재, 도기소(陶器所), 성지, 역참, 봉화, 제언 등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1469년(예종 1)에 1책으로 찬진된 『경상도속찬지리지』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에는 건치연혁, 주진(主鎭), 수령명현(守令名賢), 토성명현(土姓名賢), 공세(貢稅), 제언, 연대봉화(煙臺烽火), 참역(站驛), 정표문려(旌表門閭), 도진(渡津), 정도(程途), 종양약재(種養藥材), 어량(魚梁), 도기소, 산성, 누대(樓臺), 제영(題詠), 원우(院宇)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1530년(중종 25)에 55권으로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대구도호부에는 강계, 건치연혁, 속현, 진관(鎭管), 관원, 군명, 성씨, 형승, 산천, 토산, 성곽, 봉수, 누정, 학교, 역원, 불우(佛宇), 사묘(祠廟), 고적, 명환(名宦), 인물, 제영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조선 후기]
16세기 이후 향촌 사회에 거주하던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유학자들이 지리지 편찬의 주체가 되면서 다양한 읍지들이 제작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편찬된 읍지가 영조 대에 홍문관에서 『여지도서』로 편찬된다. 『여지도서』 대구도호부에는 강계, 방리, 호구, 도로, 건치연혁, 속현, 진관, 군명, 형승, 성지, 관직, 산천, 성씨, 풍속, 학교,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 창고, 물산, 역원, 목장, 봉수, 누정, 사찰, 고적, 명환, 인물, 제영, 한전, 수전, 진공, 조적(糶糴), 전세, 대동, 균세, 봉름(俸廩), 군병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대구도호부의 읍지는 1697년(숙종 23) 우석규(禹錫珪)[1648~1713]가 편찬한 정축년 읍지와 1757년(영조 33) 조춘경(趙春慶)[1714~1786]이 편찬한 정축년 읍지가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대구읍지(大丘邑誌)』가 1768년(영조 44)경에 편찬된다. 『대구읍지』는 건치연혁, 군명,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 호구, 전부, 군액, 성지, 창고, 봉수, 학교, 단묘, 능묘, 불우, 궁실, 누정, 도로, 제언, 장시, 역원, 형승, 고적, 토산, 진공, 봉름, 환적, 과거, 인물, 제영, 비판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832년(순조 32)경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경상도읍지』「대구부읍지」의 바탕이 된다.
고종 대에 이르면 1871년(고종 8), 1895년(고종 32), 1899년(광무 3) 등 세 차례에 걸쳐 전국 읍지가 편찬된다. 따라서 1871년과 1895년에 편찬된 『영남읍지』「대구부읍지」와 1899년 제작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구부읍지』[奎10838]가 있는데, 주요 항목은 『대구읍지』와 거의 유사하다.
그 외에 순조 대에 편찬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대구부읍지』[한古朝62-85]는 『경상도읍지』「대구부읍지」와 유사하며, 『경상도읍지』「대구부읍지」를 전사(轉寫)하여 ‘읍지보궐(邑誌補闕)’을 추가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 『대구부읍지』[奎10810], 1832년경 간행된 『대구부읍지』를 등사(謄寫) 저본으로 하여 1899년에 작성된 ‘읍지보궐초건책(邑誌補闕草件冊)’을 합하여 편찬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구부읍지』[想白古915.15-D13]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