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인
-
청주시 내덕동과 율량동에 있는 밤고개에 얽힌 전설. 조선 영조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간(諫)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충청도 회인(懷仁)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조원의를 유배지까지 호송하는 책임을 맡은 금오랑(金吾郞)은 유배지에 도착하거든 하룻밤을 묵은 뒤 그의 목을 베라는 명을 받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조원의는 유배 길에 올랐다. 일행은 사...
-
청주시 동편에 위치한 우암산(牛岩山)[338m]에 얽힌 전설. 청주시 상당구에 해발 339m인 우암산(牛岩山)[338m]이 있다. 조선 선조 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이 보은으로 가는 길에 충청남도 연기(燕岐)에서 아양산(지금의 부모산, 청원군 강서면과 비하리에 걸쳐 있는 산)에 올라 주변의 지형을 살피던 중 동쪽에 산세(山勢)가 예사롭지 않은 산이 있음...
-
영리를 목적으로 한 화폐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이란 이자를 받고 자금을 융통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일정 기간을 정하고, 앞으로 있을 원금을 상환과 이자 변제를 통해 상대방에게 자금을 이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융은 약속된 상환기간의 장기, 단기에 따라 단기금융과 장기금융으로 분류된다. 주로 전자는 운전자금의 대차를, 후자는 설비자금의 대차를 가리키는데, 이 구별은 반...
-
농민, 중소상공업자 및 서민을 조합원으로 하여 조합원에게 금융을 제공하는 신용금융기관. 1905년 '광무 9년의 금융공항’이 발생하자 농촌의 금융이란 거의 중단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졌다. 이에 대처하여 1906년부터 각지에 농공은행과 창고(倉庫)을 설립하기는 하였지만 농촌의 금융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 따라서 농촌의 금융을 소통시키기 위하여 1907년 5월에 지방금융조합규칙을...
-
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향(聖鄕), 호는 농아재(聾啞齋)이다. 충청북도 보은 회인(懷仁) 출신 타고난 기개와 큰 도량(度量)을 갖춘 인물인 동시에 담력이 있었다.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였고, 의분(義憤)이 대단하였으며, 부모를 섬기는 효성 또한 대단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일명 무신란) 청주를 주 무대로 난을 일으키자 당시 목사...
-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예보(禮甫)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의 동생인 변시익(卞時益)이다. 벼슬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변단(卞摶)으로 조봉대부경릉참봉(朝奉大夫敬陵參奉)을 지냈다.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吏曹參判兼同知義...
-
대한제국 정부에서 1898년 이후 전국토지의 정확한 규모와 소재를 파악하여 그에 의해 합리적인 조세 부과와 예산편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각종의 개혁 사업을 추진하여 근대화를 이루고자 한 사업. 대한제국 정부가 가장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여 수행한 것으로서 대한제국의 시책 중 가장 큰 업적이다. 양전사업을 시행한 주요 목적은 전정(田政)을 개혁하여...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
조선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인(汝人), 호는 어당(峿堂)이다. 이연주(李演周)의 아들로,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820년(순조 20) 회인(懷仁)에서 출생하였는데, 1871년(고종 8) 청주 강외면 연제리에 이사하여 1882년에 우거지(寓居地) 연제리에서 죽었다. 1855년(철종 6)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 되었고, 임술민란 뒤 「응지삼정소(應旨三...
-
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정진원(情盡院)이 있던 터 원(院)이란 전국 각 역(驛)에 둔 숙박시설로 정진원(情盡院)이 이에 해당한다. 원의 설치목적은 공무연락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공적임무를 띤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었다. 정진원은 청주에서 회인-보은- 문의-부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숙박시설이었다. 정진원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남쪽 남석교 건너에 있었다. 『신증동국...
-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향(鄕)의 하나. 주안향(周岸鄕)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의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향(鄕)으로, 달리 주애(朱崖)라고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청주의 동남쪽 60리에 있으며, 문의(文義)와 회인(懷仁)을 지나 있다고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淸州牧) 방리(坊里)에는 주안면(周岸面...
-
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 성종 대의 12목, 현종 대~고려 말까지 8목 중의 하나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국초에는 지방세력이 강대했던 반면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했기 때문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고, 중앙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조(太祖)는 지방세력이 강한 지역에 대한 조치로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치고, 적극적으로...
-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를 합쳐 부르는 지명.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지명으로, 1106년(고려 예종 1)에 처음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라 불린 이래 1395년(태조 4) 양광주(楊廣州) 소속 군현을 나누어 경기도라 하고 충청도와 분리하면서 몇 차례의 명칭 변동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충청도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
고려에서 조선 초기 이전의 특수한 지방 하급행정구획. 고려시대에는 군현 밑에 촌과는 별도로 향(鄕)·소(所)·부곡(部曲) 등의 특수 행정조직을 두고 있었다. 부곡과 향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 거주하였는데 반해 소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금이나 은, 철, 종이, 먹, 도자기 등을 만들기 위하여 공장(工匠)들을 집단적으로 거주시킨 특수 구역이었다. 먼저 종래의 통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