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선갑(先甲)이며, 호는 연담(蓮潭)이다. 초명은 왕부(王府)이다. 그의 아들에 곽운룡(郭雲龍)과 곽진(郭鎭)이 있는데, 곽운룡은 벼슬이 도진장(都津長)에 이르렀고, 곽진은 등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가 뒤에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었다. 1263년(원종...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
연산군(燕山郡)은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문의면(文義面)지역으로, 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에 따르면, 본래 백제 때의 일모산군(一牟山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연산군으로 고쳐 고려에도 그대로 쓴다고 하였다. 연산군의 영현(領縣)은 연기현(燕岐縣)[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과 매곡...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4대 후손이다. 아들은 이자심(李資深)이다. 충렬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 사록(南京司錄)에 임명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우정언(右正言), 지내지(知內旨)를 역임하였다. 외직(外職)인 공주부사(公州副使)에 부임하여서는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여 백성들의 살림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다시 우사간...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곽예(郭預)[1232~1286]의 묘. 곽예는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좌승지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가는 도중에 죽었다. 시문에 능했으며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는데,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의...
-
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신라 헌강왕 때에 시중을 지낸 곽상이다. 4세(世) 곽원(郭元)[?~1029]은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를 거쳐 참지정사를 지냈으며, 6세 곽상(郭尙)은 추밀원 좌승선을 거쳐 호부상서·참지정사에 오르고 두 아들로 문충공 탄(坦)과 진정공 여(輿)를 두었다. 누전하여 11세인 곽예(郭預)[1232~1286]는 문한학사와 지밀직사...
-
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 성종 대의 12목, 현종 대~고려 말까지 8목 중의 하나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국초에는 지방세력이 강대했던 반면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했기 때문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고, 중앙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조(太祖)는 지방세력이 강한 지역에 대한 조치로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치고, 적극적으로...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초명은 경(璟)이다. 고종 때 감찰어사(監察御使) 예부낭중(禮部郞中), 원종(元宗) 때 공부시랑(工部侍郞)·간의대부(諫議大夫),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조호(世子調護),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좌상시, 판삼사사(判三司事), 재추소사존(宰樞所司存),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