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경
-
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형 김환(金桓)과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한...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자방(子房), 호는 반곡(盤谷)이다. 상락군(上洛君)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이며, 음사(蔭仕)로 출사하여 1552년(명종 7)에 도사(都事)를 지내다가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만 매달렸다. 거처하는 동네 아래에 반곡(盤谷)을 쌓아 호를 반곡이라 하고 지냈다. 그가 남긴 제영(題詠)이 있었...
-
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동생 김규(金糺)와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익산(益山)이며, 상서좌복야 한림학사 승지 이주(李湊)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사록이 되고, 상서도사로 직사관을 겸하였으며, 뒤에 지홍주사(知洪州使)가 되었다. 원종(元宗) 때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포로가 되어 반란군의 선법(選法)을 맡았다가 김방경(金方慶)에게 붙잡혔으나 김방경의 아버지 이인의 제자였다 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그 후 청주목사가...
-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청주를 본관으로 삼은 김정(金錠), 김하통(金夏通), 김사지(金四知)의 세 계통. 청주김씨(淸州金氏)는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이를 계통별로 분류하면 첫째 계통은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김정을 시조로 하고, 10세손인 김보(金甫)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