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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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建-太祖山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강영순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월 20일 - 강연순이 이용호, 윤종길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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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2월 - 『천안의 구비 설화』에 수록 |
관련 지명 | 태조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
성격 | 전설|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왕건 |
모티프 유형 | 태조산의 지명 유래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전해 오는 태조산의 지명 유래에 대한 이야기.
[개설]
「왕건과 태조산 전설」은 태조(太祖) 왕건(王建)[877~?]이 고려를 건국할 때 태조산(太祖山)[약 250m]에 올라서 군사 요충지임을 파악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왕건과 태조산 전설」은 1991년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이야기의 일부를 채록하여 1994년 『천안의 구비 문학』에 수록하였다. 2010년 1월 20일에는 단국 대학교 교수 강영순이 채록하여 2010년 『천안의 구비 설화』-직산읍 편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리에 사는 이용호[남, 78세]와 향토 사학자 윤종길[50세, 남]이다.
[내용]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甄萱)[867~935]을 칠 때에 수군은 아산만(牙山灣)으로 상륙하고 육군은 직산(稷山) 성거산(聖居山)에서 집결하였다. 왕건이 천안 태조산 정상에 이르러 보니 높지는 않으나 군사 요충지로 시야가 넓게 보였다. 그리하여 왕건은 수군과 육군을 합쳐 태조산에서 진을 치고 후백제를 칠 수 있었다. 태조산 아래 천안 외곽에 위치한 유량동(留糧洞)은 왕건이 군량미를 비축하였던 곳이다. 태조산 북쪽 목천 방향으로는 태조가 머물렀다는 유왕골(留王-)이 있다. 원래 태조산의 이름은 임금 ‘왕(王)’ 자처럼 생겨서 왕자산(王字山)이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왕건과 태조산 전설」은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과 유량동 사이에 있는 산에 대한 지명 유래담이다. 고려 시조인 왕건이 산에 올라 지세를 살폈기 때문에 왕건의 왕호를 따서 태조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왕건이 후백제 일부를 점령하고 목천 일대를 다스릴 때 이 산에 주둔하였다고 전한다. 산의 여러 지역에 왕건과 관련된 세부 지명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