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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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兄弟峰-兄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욱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6월 30일 -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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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형제봉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 |
성격 | 전설|지명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서자 형제 |
모티프 유형 | 서자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형제봉이 된 형제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에 전해 내려오는 형제봉의 지명 유래담.
[개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에는 마치 붓끝처럼 생긴 봉우리 두 개가 솟아 있다. 고을 사람들은 나란히 솟은 이 봉우리들을 형제봉이라 불렀다. 형제봉을 소재로 한 「형제봉과 두 형제」는 어느 대감의 서자로 태어난 형제가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끝내 신분적인 제약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명에 죽어 형제봉이 되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형제봉과 두 형제」는 민병달·이원표 등이 조사하여 1998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하였다.
[내용]
한양 어느 대감의 첩으로 들어간 여인이 아들 형제를 낳았다. 마지못해 첩살이를 하던 여인은 대감이 죽자 형제를 데리고 지금의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에 있는 버드랫골 골짜기로 들어와 살았다. 홀몸으로 두 아들을 기르다 지친 여인은 아홉 살과 일곱 살의 아이들을 남겨 둔 채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여인을 뒷산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주었다.
형제는 나무를 해다 팔아 연명하면서도 서당에 나가 열심히 글공부를 하였다. 형제는 장성하여 벼슬길에 나가고 싶었으나 서출이라 불가능함을 깨닫고 학문에만 정진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쟁으로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도망쳤다는 한 선비가 형제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며칠 뒤 두 형제는 선비를 따라 집을 떠났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형제는 어머니의 제삿날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제사만 지내고 다시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형제가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져 가서 서당 선생이 되었다고 하였다. 어느덧 형제가 마을을 떠난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호남에 큰 난리가 나서 어수선하던 해에 마을에 나졸들이 몰려와서 형제의 어머니의 묘를 파헤치더니 불까지 지르고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두 형제가 큰 변을 당했다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버드랫골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며 땅이 무너지듯 천둥 번개가 치더니 갑자기 땅 속에서 봉우리 두 개가 붓끝처럼 솟아났다. 마을 사람들은 서출인 두 형제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죽어 봉우리로 솟아났다며 형제봉이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형제봉과 두 형제」는 높은 벼슬아치의 서자로 태어난 형제가 재능은 뛰어났으나 신분적인 제약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원통하게 죽어 형제봉이 된 형제의 이야기이다. 중세 시대의 신분 차별에 대한 비판이 설화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형제봉은 중세의 신분 질서라는 장벽에 부딪쳐 좌절한 형제의 비극을 대변하는 증거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