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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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一晧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산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88년 - 황일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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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41년 - 황일호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641년 - 황일호의묘 조성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황일호의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황일호의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황일호의묘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황일호의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산3 |
성격 | 능묘 |
관련 인물 | 황일호|전주 이씨 |
소유자 | 종중 |
관리자 |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황일호의 묘.
[개설]
황일호의묘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황일호(黃一皓)[1588~1641]의 묘소이다. 황일호는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배종한 공으로 진주목사에 올랐다. 1638년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명나라를 돕고, 청나라를 치고자 최효일(崔孝一) 등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1641년(인조 19)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었다. 1681년(숙종 7) 정경에 추증되었고, 1711년(숙종 37)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묘역 근처에는 황일호 신도비가 있다. 황일호의묘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위치]
황일호의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산3번지에 있다.
[형태]
황일호의묘는 앞쪽에 상석이 놓여 있으며, 묘비는 입비석의 형태로 상석의 오른쪽에 있다. 묘비의 앞쪽 양쪽에는 망두석(望頭石), 문인석(文人石)이 각각 2기씩 배치되어 있다.
[금석문]
황일호의묘 묘비에는 황일호와 부인 전주 이씨를 합장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묘비의 전문은 ‘의주부윤 증좌찬성시 충열황공휘일호지묘 정경부인전주이씨부좌(義州府尹 贈左贊成諡 忠烈黃公諱一皓之墓 貞敬夫人全州李氏祔左)’이다.
[현황]
[의의와 평가]
황일호의묘는 부여 지역 충절의 상징인 황일호의 묘로서, 부여 지역민들의 자부심과 애향심을 고무시키는 사적지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조선 후기 분묘의 일반적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