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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당에 좌정한 용계은행나무 살린 처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430
한자 龍溪堂-坐定-龍溪銀杏-處女
영어의미역 Young Womon Who Saved the Gingko in Yonggye-r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집필자 조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
주요 등장인물 처녀|상노인|동네 사람들
관련지명 용계마을|용계당|건바골
모티프 유형 용계리 은행나무를 살린 처녀|동신이 된 처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서 용계당과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5년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서 주민 김종환(남, 64)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에 수록하였다.

[내용]

원래 용계마을에는 탁씨가 살았다고 한다. 깊은 산속에서 나무를 해 가며 살 때에는 지금의 용계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곳이 집터였다. 탁씨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건바골 들어가는 건너편 등성에 탁씨 딸의 묘가 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탁씨의 딸이 세운 것이며, 처녀의 제사는 현재 탁씨 일가가 지내고 있다.

처녀가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를 세우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어느 날 처녀는 강가에 있는 하얗게 까놓은 은행나무가 물에 둥둥 떠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처녀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은행나무를 주워 부뚜막에 묻어 놓고 연속하여 물을 주었다. 물을 주고 정성을 들이니 곧 은행나무가 살아났다. 촉이 올라오면서 점차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은행나무는 점차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처녀는 죽게 되었다.

이후 용계마을에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여 권씨도 들어오고, 이씨도 들어오고 하였다. 본래 용계마을에 살던 탁씨 가문은 점점 가세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상노인의 꿈에 처녀가 현몽하였다. “내가 저 건너편에 있는 은행나무를 살린 처녀입니다. 나를 동네 성황으로 세워 주면 이 동네를 편안하게 해 주겠습니다.” 알고 보니 상노인 한 사람에게만 현몽한 것이 아니라 동네 몇 사람에게 그렇게 현몽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용계당이 세워졌다. 용계당의 고리짝에는 치마와 저고리를 한 벌을 넣어 두었고, 용계당 주위에는 돌담을 해 놓았다. 언제나 정월 열나흗날 수리를 하고, 정월 보름날에는 제사를 지냈다. 수리할 때는 안에 들여다보아 버들가지로 만든 고리가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수리하였다.

현재는 청년들이 제사를 귀찮게 여겨 안 지내려고 한다. 정월 열 나흗날 수리를 해서 삼 일 동안을 기도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금기를 지키면서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동네 청년들이 모두 귀찮다고 그만두려 하는 것이다.

[모티프 분석]

「용계당에 좌정한 용계은행나무 살린 처녀」의 주요 모티프는 ‘용계리 은행나무를 살린 처녀’와 ‘동신이 된 처녀’이다. 보통 여성의 신격화는 그 대상이 원혼인 경우가 많은데 비하여 「용계당에 좌정한 용계은행나무 살린 처녀」의 경우는 용계은행나무를 살린 인물이기 때문에 신으로 모셔지는 특수한 사례이다. 현몽을 통하여 좌정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모티프이지만 고리짝에 치마저고리를 넣어 두어 신체로 삼는 것은 독특한 설정이다. 더불어 이야기 말미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신앙심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까지 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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