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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삼거리」[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237
한자 天安三-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5월 15일 - 『천안의 구비 문학』에 수록
관련 지명 천안 삼거리 공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306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능수[능소]|박현수|선비|박문수|생원|생원의 아들|생원의 조카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천안 삼거리에 전해 오는 능수버들과 민요의 유래담.

[개설]

「천안 삼거리」는 민요 「천안 흥타령」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박 선비와 능소의 이야기, 부녀 혹은 부자의 이야기, 형제 이야기 등의 여러 종류가 전한다. 여러 성격의 주체들이 천안 삼거리에서 이별했다가 재회하면서 불렀다는 노래가 「천안 흥타령」이다.

[채록/수집 상황]

「천안 삼거리」는 1979년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에도 수록되어 있다. 또 1991년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조사하여 보고하였으며, 홍윤표 교수가 2010년 천안시에서 발표하여 자세히 알려졌다.

[내용]

「천안 삼거리」는 크게 다섯 가지의 내용으로 전해 내려온다.

1. 전라도 고부(高阜)의 양반인 박현수가 과거를 보러 상경하는 길에 도적을 만나 두들겨 맞고 도망쳐 와 천안 삼거리 주막에서 머물게 되었다. 박현수는 주막집 수양딸인 능소가 극진히 간호하여 준 덕분으로 건강을 추슬러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갔다. 과거에 급제를 하니 박현수에게 여러 관리들이 중매를 넣었지만 박현수는 능소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두 거절했다. 천안으로 돌아간 박현수는 능소와 재회한 뒤 본가에 연락하여 혼례를 서둘렀다. 혼례 때 신이 나서 흥겨운 가락이 흘러나온 것이 바로 「천안 흥타령」이다.

2. 천안 삼거리 객줏집에 능수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 중에 능수가 있는 객줏집에 유숙하였다. 능수는 선비와 깊은 정이 들어 과거 보러 떠나려 하는 선비를 만류하며 자신과 함께 살자고 하였다. 선비는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버들가지를 주막에 꽂으며 “이 버들이 뿌리가 나서 가지가 생기면 내가 돌아올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선비는 어사화를 꽂고 천안 삼거리로 약속대로 돌아왔지만 능수는 이미 죽은 뒤였다. 선비는 슬픔에 잠겨 그 자리에서 시를 지어 불렀다.

3. 어사 박문수(朴文秀)[1691~1756]가 낙향하여 시골에 있다가 전쟁이 나서 임금이 부르자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박문수는 아내와 어린 딸 능수를 데리고 천안 삼거리까지 왔다. 그러나 딸이 너무 어려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아내와 딸을 천안 삼거리에 두고 혼자 가기로 결정하였다. 박문수는 지팡이를 땅에 꽂고 나무가 살아서 클 때까지 돌아온다고 약속하였다. 박문수가 돌아와 보니 능수는 이미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박문수가 신이 나서 “능수야!”라고 부르며 흥타령을 하였다.

4.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가던 선비가 천안 삼거리에서 유숙을 하였는데, 천안의 기생인 능수와 하필 눈이 맞아서 과거 날짜를 놓쳤다. 선비는 천안 삼거리에서 지내다 다음 해 과거를 다시 보았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면목이 없이 고향에 내려가지도 못한 선비는 능수와 살면서 술만 먹으면 “능수야!”, “버들아!” 하고 부르며 축 늘어지고는 하였다. 원래 ‘능수버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선비가 부른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5. 옛날 어느 마을 생원이 조카를 데려다 키웠다. 생원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생원이 아들에게 혼담이 들어왔음에도 형뻘 되는 조카부터 장가를 보내려고 하니 아들이 집을 나가고 말았다. 조카는 혼인하러 가는 길에 후행(後行)으로 마을의 한 선비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혼인 첫날밤에 조카가 아들을 찾아오겠다고 돌연히 행방을 감추었다. 그사이 집을 나간 생원의 아들은 절에서 공부를 하다 3년 후 과거를 보러 서울로 향하였다. 조카와 후행을 따라 나섰던 선비도 과거를 보러 서울로 향하였다. 세 사람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아들은 재상가의 사위가 되고, 후행 선비는 생원의 누이와 혼인하고, 조카는 예전에 혼례를 올렸던 신부와 다시 혼인하였다. 세 쌍의 부부가 천안 삼거리에 이르러 세 길에 버드나무를 심으며 이날을 기념하였다. 이때부터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이 유명해졌다.

[모티프 분석]

「천안 삼거리」천안 삼거리 능수버들과 「천안 흥타령」의 유래담이다. 삼남대로(三南大路)의 교차점인 천안 삼거리에 드나드는 길손과 그곳에 거주하는 여인 사이에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었음 직하니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야기도 여러 가지로 전해 온다. 주막집 주인 아가씨, 절세의 기생, 부자나 부녀가 모두 ‘만남과 이별’, ‘기다림’, ‘다시 만남’을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편 교통의 요지가 인연이 되어 만나서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허탈해하는 변이형도 있다. 1933년 『삼천리』 잡지에 수록된 희곡 「능수버들」, 1952년 삼중당에서 펴낸 「천안 삼거리」, 1986년 민병달 전 천안 문화원장의 『천안 삼거리 능소전』 등의 각색된 문학 작품이 계속 만들어져 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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