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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낙수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149
한자 宋時烈-落水巖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6월 25일 -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이세응, 이원표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10월 5일 -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6월 30일 -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 『한국 지명 유래집』 충청편에 수록
관련 지명 행암리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지도보기
채록지 천동 초등학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동산리 553 지도보기
채록지 동리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이름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송시열
모티프 유형 석학과 관련된 암석 명명 전설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사루개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와 관련된 이름 유래담.

[개설]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주변은 풍광이 뛰어나고 수석이 아름다워서 예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봄의 신록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모두 뛰어난 곳이다. 「송시열과 낙수암」은 조선 후기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거유(巨儒)이자 석학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행암리를 찾아 폭포처럼 떨어지는 개울물을 보고 ‘낙수암(落水巖)’이라고 써서 바위에 새기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 옆에 있는 오언절구(五言絶句)는 행암 거사(杏岩居士) 주석영(周錫永)의 글이다.

[채록/수집 상황]

상명대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1990년에 천안시 동남구 동면 동산리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에서 주세응[62세, 남]과 이원표[53세, 남]에게 채록하여 1996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하였다. 또한 민병달·이원표 등이 조사하여 1998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민담과 설화』와 국토 해양부 국토 지리 정보원에서 2010년에 발간한 『한국 지명 유래집』 충청편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사루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바위가 가로로 누워 있다. 바위 아래로는 개울물이 모여 흐르는데, 그 소리가 폭포 소리처럼 우렁차다. 바위 사이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고, 주변으로도 큰 느티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자연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바위의 서쪽 면에는 ‘낙수암(落水巖)’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전한다.

송시열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때 구원군을 보낸 명나라 신종(神宗)[1563~1620]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만동묘(萬東廟)를 건립하기 위해 터를 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송시열의 제자 중 하나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와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를 소개하여 답사하였는데, 행암리는 장소는 좋으나 협곡이어서 결국 화양리를 터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때 송시열이 후보지인 행암리에 다녀갔다는 표시로 ‘낙수암’이라는 글을 써서 바위에 새기게 하였다.

[모티프 분석]

우암 송시열이라는 당대 석학과 관련된 암석 명명 전설이다. 이러한 전설의 시원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의 가야산 국립 공원 홍류동(紅流洞)에서 비롯되었다. 통일 신라의 문장가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간 뒤 그곳 골짜기 이름을 친필로 써서 명명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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