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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쟁주 놀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088
한자 五龍爭珠-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개시 시기/일시 1970년대 - 천안시민의 날 행사에서 처음 시작
소멸 시기/일시 1970년대 후반 - 오룡쟁주 놀이 천안시민의 날 행사에 몇 년간 시행되다가 사라짐
놀이 장소 오룡쟁주 놀이 - 충청남도 천안시
성격 축제|행사|놀이
노는 시기 시민의 날
관련 의례 행사 시민의 날 행사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지세(地勢)에 얽힌 풍수 설화를 바탕으로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축제 형식으로 꾸민 놀이.

[개설]

오룡쟁주 놀이는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자웅(雌雄)을 겨루는 놀이이다. 이 놀이는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가 아니라 천안시민의 화합을 도모할 목적으로 새롭게 구성된 것이다.

다섯 마리의 용은 천안시의 시세 확장과 발전을 의미하고,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쟁취함은 천안시민의 선의의 경쟁과 희망, 진취 의욕을 의미한다. 그리고 놀이 중의 함성과 오룡의 위용은 시민의 영원한 건강과 남성들의 용맹을 상징하고, 곱게 단장한 선녀들이 정성껏 받쳐 들고 있는 여의주는 여인들의 순결한 정신과 고고한 자태 및 향토 사랑을 의미한다. 또한 오룡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을 벌이는 뜻은 천안시민의 단결 정신과 화합을 상징한다.

[연원]

오룡쟁주 놀이는 1970년대 후반 천안의 향토 사학자였던 고 오창수 선생이 천안시의 지리적인 특징과 왕건 설화를 바탕으로 놀이를 창안하여 시민의 날 행사에 선을 보인 것이 그 효시라고 한다. 당시 천안 여자 상업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작품에 출연했으며, 이후 몇 년 간 천안시 문화 체육 행사에 연출되었으나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놀이 방법]

오룡쟁주 놀이에 등장하는 다섯 마리의 용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동청룡, 남적룡, 서백룡, 북흑룡, 중앙황룡으로 구분된다. 이를 천안의 지세에 적용하면 남산은 여의주를 뜻하고, 동청룡은 장대산, 서백룡은 일봉산, 남적룡은 청수동수도산, 북흑룡은 천안 초등학교의 정봉을 각각 일컫는다. 그리고 중앙의 황룡은 지금의 천안시청에서 중앙 초등학교로 뻗은 산맥을 지칭한다.

이러한 지세에 착안하여 남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마을이 오룡에 비정(比定)되어 여의주를 다투는 놀이로 구성되었다. 이 놀이의 시작은 30여 명으로 구성된 농악대의 경쾌한 3채 가락에 맞춰 오룡쟁주 놀이 깃발이 선두에 서서 입장한다. 깃발 뒤에는 총 지휘자가 당당한 기세로 입장을 하고, 그 뒤로 단장을 한 10명의 선녀가 여의주를 오색 원단에 받쳐 들고 따라간다. 선녀 뒤에는 여의주를 호위하는 30명의 호위병이 초록색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한다. 마지막에는 청룡·백룡·적룡·흑룡·황룡이 각각 용기(龍旗)를 앞세우고 호위병을 거느린 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위용을 과시하며 들어온다.

이윽고 놀이가 시작되면 다섯 마리의 용들은 붉은색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하여 입에서 불을 내뿜고 몸과 꼬리를 마구 흔들면서 치열하게 위용을 과시한다. 오룡의 여의주 쟁탈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다. 다툼이 점점 격해지면 구경하는 주민들도 자기 마을의 용이 여의주를 빼앗도록 응원에 열을 올리는데, 그 함성과 풍물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바야흐로 오룡쟁주 놀이는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세 차례의 격렬한 싸움 끝에 상처를 입거나 지쳐 버린 용은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오직 쟁탈전에서 이긴 최후의 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입에 물고 당당하게 운동장을 돌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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