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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장터 줄다리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077
한자 -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멸 시기/일시 1950년대 -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 소멸
재현 시기/일시 1996년 음력 1월 15일 - 아우내 문화원 주관으로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 재현
놀이 장소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지도보기
주관 단체 천안시 동남구 문화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지도보기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월 대보름|단오
관련 의례 행사 풍농 고사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윤년이 드는 정월 대보름에 시장의 부흥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던 민속놀이.

[개설]

충청남도 천안 지역은 줄다리기가 매우 성행했던 곳이다. 천안시 쌍용동, 성성동, 차암동, 직산읍 등 다수의 마을에서 줄다리기가 정월 대보름 세시 풍속을 대표하는 민속놀이의 하나였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장시(場市)의 개설 이후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매년 개최된 것이 아니라 충청남도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와 마찬가지로 윤년이 드는 해에 지역 유지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후 시장의 발전을 위해 번영회에서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고, 행정 기관의 지원을 받은 사회단체에서 주관하기도 했다.

윤달이 드는 2~3년을 주기로 정월 대보름 무렵에 행해졌던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천안 지역 최대 규모의 줄다리기 행사로 전승되었다. 줄다리기뿐 아니라 씨름 등 여러 놀이도 함께 해서 며칠 동안 난장이 서고, 이를 구경하려는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1996년 아우내 문화원[현 동남구 문화원]에서 지방 자치 단체의 후원을 받아 수백 명의 주민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규모의 행사로 재연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아우내 단오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연원]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의 연원은 분명하지 않다. 단지 아우내장이 개설된 조선 후기에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향시(鄕市)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대규모의 줄다리기를 했는데, 예전에는 상인들도 농사를 겸했던 까닭에 시장의 발전과 풍농을 기원했다는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아우내장은 100여 년 전 옛 장터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전하는데 당시에도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일제 강점기에는 거의 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우내 장터가 1919년 항일 운동의 기치를 든 만세 운동의 역사적 현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8·15 해방 이후에 다시 복원되어 10여 년 동안 줄다리기를 하다가 중단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줄다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아우내장과 주변마을을 대상으로 정초부터 걸립(乞粒)을 돌았다. 걸립패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면 상업에 종사하는 시장 상인들이 많은 돈을 희사했다고 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에서도 시장 번창의 명분을 내세워 상인들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구했으며, 지역 유지와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찬조금을 희사했다.

중단된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1996년 정월 대보름아우내 문화원의 주관으로 재연되었다. 당시 암줄과 수줄, 곁줄을 다리는데 무려 3만여 속의 짚이 소요되는 대규모의 행사였다. 그러나 이후 재정 확보의 어려움과 인력의 부족으로 더 이상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놀이 방법]

행사 당일 암줄과 수줄에 비녀목을 꽂아 연결하면 신명나는 풍물놀이가 벌어진다. 이 소리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운집한 가운데 분위기는 점점 고조된다. 줄다리기에 앞서 비녀목 앞에 고사 상이 차려지면 유교식 절차에 따라 시장의 번영과 지역민의 안녕, 그리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본격적인 결전에 앞서 학생 대항 및 지역 대항 줄다리기를 실시한다. 그런 다음 남녀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들은 여자 편에 가담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그래서 승벽(勝癖)이 강한 할머니들은 남자 편에 붙어 있는 총각들을 찾아다니며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남녀의 겨루기는 징소리를 신호로 시작된다. 여느 줄다리기와 동일하게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양편이 세 번 줄을 당겨서 두 번을 먼저 이기는 편이 승리하게 된다. 줄을 당기는 방식은 여자 편이 먼저 “이영차.”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당기면, 남자 편에서도 “이영차.” 하고 함성 소리와 함께 줄을 당긴다.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예로부터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다. 그런 연유로 혼인을 하지 않은 총각들을 여자 편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줄다리기는 한 차례 겨루기로 승부가 나지만, 예전에는 3일 동안 줄다리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시장의 부흥과 더불어 풍농과 밀접한 관련을 띠고 전승되었다. 달, 여성, 풍요의 상징인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은 이를 잘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일체감을 확인하고 자긍심을 갖게 된다. 이런 면에서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지역 축제의 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현황]

아우내 장터에서 거행되었던 대규모의 줄다리기는 1996년 재연된 이래 더 이상 전승되지 않는다. 그 대신 매년 단오에 열리는 ‘아우내 단오 축제’의 일환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되어 명맥을 잇고 있다. 시장의 부흥과 풍농을 기원했던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는 이제 주민들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소박한 겨루기의 형태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8.07 지명 수정 '쌍룡동'을 '쌍용동'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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