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호당리 호당 산신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035
한자 虎堂里虎堂山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 1리 호당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산제당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 1리 호당 마을 위례산지도보기 아래
성격 민간 의례|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음력 1월 초]
신당/신체 산제당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 1리에서 매년 정월 초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 1리의 호당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초에 산신제의 날짜를 정하고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가려 부정이 없고 정결한 사람으로 제관(祭官)과 축관(祝官)을 선정한다. 제관과 축관은 그날부터 술과 담배를 금하고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하며 정성을 드린다. 그리고 산신제를 마치는 날까지 비린 음식이나 육류를 먹지 않는다. 하루 전에는 산제당을 말끔히 청소하고 나서 제의에 쓰는 술인 조라술을 담그고 하산하여 대문 앞에 황토를 뿌려서 주민들의 출입을 막는다.

산신제의 비용은 마을의 공동 기금에서 충당하되 부족한 해에는 집집이 조금씩 나누어 낸다. 제물은 통돼지 한 마리를 도살하여 통째로 차려 놓는다. 이 밖에 삼색과실, 백설기, 포 두 마리, 메 등이고 술은 조라술을 사용한다. 제사 당일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외출을 금하고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신한다.

[연원 및 변천]

호당리 호당 산신제의 연원이나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산신제의 신격이 위례산 산신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위례산을 신성시하는 관념이 산신제의 형태로 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을의 뒤편에는 산성이 있는데,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백제의 위례성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위례성 주변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산신제를 지내며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여 왔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마을에서 1㎞가량 떨어진 위례산 아래 쇠골에 자리한다. 본래는 초옥 단칸의 작은 제당이었으며 해마다 가을걷이를 마친 뒤에 품을 내어 이엉을 씌웠다. 그러다가 새마을 운동 때 미신을 타파한다며 강제로 제당을 없애 버려 다시 건립한 것이다. 당시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나무로 벽을 세우고 진흙을 발라 건물의 뼈대를 세우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었다.

제당의 주벽에는 산신도나 위패를 봉안하지 않고 다만 제물을 차려 놓는 2단의 선반을 갖추어 놓았는데 위에는 통돼지를, 아래는 나머지 제물을 차린다. 또한 제당 내부에는 제기가 보관되어 있다. 산제당 옆에는 찬샘으로 불리는 산제샘이 있다.

[절차]

제관과 축관은 산신제 하루 전에는 산제당에 올라가서 깨끗이 청소하고 나서 조라술을 담가 놓는다. 제사 당일 제관과 산신제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산제샘에서 찬물로 목욕재계한다. 산신제는 기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절차로 진행되며, 축관이 축문을 읽은 후에 제를 마치면 집마다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사르는 흰 종이] 한 장씩을 불사르며 그 집안이 무탈하기를 기원해 준다.

호당 마을에서는 산신제를 지낼 때 마짐시루[마중시루]를 올리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제관 일행이 산제당으로 향하면 각 가정은 떡가루를 쪄서 시루를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다. 바야흐로 산제당에 제물을 차리면 어느 한 사람이 마을을 향하여 “떡시루 떼시오!”라고 크게 세 번을 외친다. 그러면 각 가정에서는 그 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찐 떡시루를 장독대로 옮겨 산신을 맞이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린다. 이렇듯 각 가정에서 지내는 산신제라 할 수 있는 의례가 바로 마짐시루이다.

[부대 행사]

산신제를 마치면 전 주민이 마을 회관에 모여 함께 음복을 나누며 하루를 즐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