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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116
한자 姜泗-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728년 - 이인좌의 난 때 별장으로 직산현을 수비
성격 무신
성별
대표 관직 별장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무신.

[개설]

강사흡(姜泗흡)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당시 직산현을 지켰다.

[가계]

지군사(知郡事)를 지낸 강중선(姜仲善)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별장(別將)으로 직산현에 있었다. 이인좌의 반란군이 몰려오자 직산 현감과 이속들이 모두 도망쳤으나 강사흡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상의하여 “반란군이 경계를 침범하는데 고을을 지킬 의무가 있는 수령도 도망하였으니 우리마저 가족을 데리고 도망하면 누가 성읍을 지키겠는가.” 하고 장정들을 이끌고 빈 현청을 지켰다.

이때 반란군과 관계된 자가 와서 온갖 공갈과 협박을 가하였으나 엄중하게 거절하고 물리쳤다. 나아가 동료들을 모아 반란군을 토벌하였으며 창고에 있는 곡식과 무기 등을 빼앗기지 않았다. 새로운 현감이 부임할 때 군적과 곡식 장부를 가지고 맞이하니 신임 현감이 좋아하였다. 하지만 반란이 진압된 후에 강사흡의 공이 중앙 정부에 보고되지 않아 생전에 한 치의 봉록도 받지 못했고, 자손에 대한 포상도 입지 못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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