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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096
한자 金義淵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선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22년 3월 11일 - 김의연 통덕랑에 추증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언양(彦陽)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언양(彦陽)이다. 충신 김응상(金應祥)의 6세 손이며 목사 김동연(金東淵)의 아우이다.

[활동 사항]

김의연(金義淵)[?~?]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바르고 지극한 효자였다. 네다섯 살 때에 어머니가 병이 들어 “내가 죽으면 누구에게 의지하겠느냐?”라고 걱정하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제가 어찌 혼자 살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를 따라 죽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어머니가 크게 감동하여 병환이 저절로 나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들어 자리에 눕자 명의를 찾아 영남 지방으로 갔으나 의원은 이미 죽은 뒤였다. 밤에 여관에서 울고 있는데 한 노인이 “나그네는 얼굴에 근심이 있고 밤에 잠을 못 이루니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사실대로 대답하니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주며 “이것을 먹으면 효험을 보리라.” 하였다. 돌아와 약을 드리니 노인의 말대로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후에 또 아버지의 병이 깊어지자 밤마다 하늘에 빌며 자신이 대신 앓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했으나 병이 낫지 않아 애통함에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가 평소 명경과에 응시하기를 권유했는데, 임종에 이르러 유언하기를 매월 세 번씩 묘 앞에 와서 글을 외우라고 하였다. 김의연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수십 년 도안 묘 앞에서 절한 다음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죽은 쥐 홀로 된 어머니를 더욱 극진히 섬겼다. 청렴하여 집안이 가난했지만 어머니의 입에 맞는 음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고,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였다.

어머니가 병들어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삼일을 더 연명케 하여 서울에 있는 형이 임종을 지키게 하였다. 어머니가 죽자 슬퍼하며 음식을 먹지 않았고, 어머니를 위해 잘랐던 두 손가락마저 덧나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부인 이씨도 시어머니가 죽은 뒤 남편과 함께 슬퍼하며 음식을 먹지 않다가 남편보다 먼저 숨을 거두었다.

[상훈과 추모]

1822년(순조 22) 3월 11일에 김의연은 통덕랑에 추증되었고, 부인 이씨에게도 열녀 정려(烈女旌閭)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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