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어유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32
한자 魚有鳳
이칭/별칭 순서(舜瑞),기원(杞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창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2년연표보기 - 어유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19년 - 어유봉 사헌부 집의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32년 - 어유봉 사복시 정·사헌부 집의 역임
활동 시기/일시 1733년 - 어유봉 호조 참의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34년 - 어유봉 승지·찬선 역임
몰년 시기/일시 1744년연표보기 - 어유봉 사망
성격 문신|학자
성별
본관 함종
대표 관직 승지|찬선

[정의]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학자.

[가계]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이다. 어세공(魚世恭)의 9대손이고, 한성부 우윤을 지낸 어사형(魚史衡)의 아들이며, 경종의 장인인 어유구(魚有龜)의 형이다.

[활동 사항]

어유봉(魚有鳳)[1672~1744]은 사마시를 거쳐 1699년(숙종 25) 대과(大科)에 응시했다가 시험의 부정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였다. 뒤에 내시 교관(內侍敎官)이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가 건원릉(健元陵) 참봉으로 부임했으며, 1719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지낸 뒤 양주(楊州) 목사에 전임되자 사퇴하였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로 스승 김창협(金昌協)이 화를 입자 신원해 주기를 상소하였고, 1732년(영조 8)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거쳐 사헌부 집의가 되었다. 1734년 호조 참의, 이듬해 승지에 이어 찬선(贊善)을 지냈다.

조선 후기의 거유(巨儒)로서, 한원진(韓元震)이간(李柬)이 심성변(心性辨)으로 논쟁할 때 이간의 편에 서서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동일하게 오행(五行)의 이치를 갖추었다고 주장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은 『기원집(杞園集)』이 있고, 저서는 『경설 어록(經說語錄)』·『오자수언(五子粹言)』·『논어 상설(論語詳說)』·『어류 요략(語類要略)』·『대월첩(對越帖)』·『풍아규송(風雅閨誦)』 등이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