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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리 분청사기 요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612
한자 陽谷里粉靑沙器窯址
이칭/별칭 즘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양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11월 -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 -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양곡리 웃말 별장골
출토 유물 소장처 공주 대학교 박물관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182
성격 가마터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양곡리 웃말에 있는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 가마터.

[개설]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陽谷里 粉靑沙器 窯址)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양곡리의 웃말에 있는 분청사기 요지이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즘터’라 불러 왔고 분청사기 조각과 가마터가 남아 있었다.

[변천]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는 서향 사면의 구릉 하단부로, 목장이 들어선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측 구릉에 분포되어 있었다. 1996년 조사 당시 이미 도로의 개설과 밭의 개간으로 대부분 파괴되거나 매몰되었고 지금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위치]

북면사무소에서 입장 방면의 57번 도로로 가면 사담리의 사담 제2교가 있다. 이곳을 건너 동북쪽 도로로 1.5㎞ 정도 들어가면 북면 양곡리 마을이 나온다. 양곡리 마을의 남동쪽 삼정 고개 방향으로 약 1㎞ 떨어진 에스원 연수원 자리가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가 있었던 곳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양곡리 유적은 에스원 연수원의 부지 조성 과정에서 구제를 목적으로 발굴 조사되었다. 구제 발굴은 건설로 유적이 파괴될 처지에 놓여 있을 때 이루어지는 발굴이다. 1996년 11월부터 약 2개월간 공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작업을 실시하여 분청사기 조각이 다량으로 나오는 곳을 A 지역, 백자 조각이 발견되는 곳은 B 지역으로 구분한 뒤 정밀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는 A 지역에서 B 지역 순으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요지의 상단부만 남았지만 규모가 큰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조선 초기의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A 지역에서는 다량의 분청사기 조각과 4기의 분청사기 요지가 나타났다. 모두 경사면에 아궁이와 소성실(燒成室)[그릇을 굽는 곳]을 구축한 반지하식의 등요(登窯)[산등성이 비탈길에 굴 모양으로 길게 만든 가마]이다. 연실(煙室) 부분은 유실된 상태이고, 연실과 연결된 소성실도 구조와 규모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남아 있는 벽면의 일부를 통해 터널형의 천정 구조를 추정하였고, 소성실의 바닥 형태는 계단상이며 모래 위에 그릇 받침을 놓고 구웠음을 알 수 있었다.

유물은 가마의 위쪽과 소성실에서 수습한 것으로 나누어지며 모두 분청사기만 있었는데 대부분이 귀얄 분청이고 인화 분청도 몇 점 있었다. 4기의 가마가 몰려 있지만 모두 동일한 시기의 것인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B 지역은 백자 조각만 수습되었으며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발굴 당시에는 발굴된 지역보다 위쪽에 가마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현황]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는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주변이 정비되었다. 1996년 겨울에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고 1997년 12월에 발굴 보고서가 간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에 조업하였던 가마로 추측되는 유적이다. 유적이 위치한 목천 지역은 조선 전기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을의 토산물로 자기가 꼽힐 만큼 요업이 활기를 띠었다. 이와 같은 목천 지역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는 1500년대 주요 자기 생산지로 손꼽힐 수 있을 것이다. 유적은 구제 발굴된 상태로 원형은 사라졌으나 발굴 결과를 통해 그 의미를 추적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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