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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20
한자 大井里藥水
이칭/별칭 초정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대정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약수
관련 문헌 『세종실록』|『대록지』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대정리에 있는 약수.

[개설]

성남면 대정리에는 초수(椒水)가 나오는 초정(椒井)이 있다. 초수는 호초 같은 맛이 나는 물이란 뜻이다. 여러 질병을 고치는 데 효험이 있다 하여 조선 세종 대부터 국가적으로 관심을 갖고 관리하였다.

[명칭 유래]

성남면 대정리는 조선 시대 목천현에 속했던 마을이다. 대정리는 1914년에 대티리, 초정리, 마산리, 하대티리를 병합하면서 생긴 지명이며, 초수가 나오는 약수가 있던 지역은 조선 시대에 초정리로 불렸다. 이곳에서 초수가 나온다는 사실은 『세종실록(世宗實錄)』 1444년(세종 26) 1월 27일 기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청주에 호초 맛이 나는 초수가 있는데 목천과 전의에도 같은 것이 있다 하였다. 이에 세종은 훗날 거동하여 안질(眼疾)을 치료하고자 행궁을 세우게 하고, 물을 얻어오도록 명하였다.

[형성 및 변천]

1444년 목천 초수 주변에 행궁을 건설하라는 명이 있었지만, 실제 건립이 되었는지 확인이 되지는 않는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세종대 이외에는 목천 초수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 지역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위말미 초정 마을의 논 가운데에는 돌로 쌓고 굴참나무 널판으로 짠 우물이 있는데,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거둥하려다 마침 가뭄이 심하여 민폐를 걱정하며 물을 실어가기만 하였다 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성남면 대정리는 조선 시대 목천현 남면에 속해 있었다. 대정리에는 중샘[위 초정]과 위말미 초정 2개의 초정이 전해진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에 따르면 1444년(세종 26) 1월 27일 목천의 초수가 세종에게 보고되면서 행궁을 세우라는 명이 내려졌다. 같은 해 2월 세종은 초수로의 행차에 앞서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병의 기운이 있을까 염려되니 미리 먼 곳으로 옮겨 치료하도록 하라 명하고, 혹시 임금의 행차에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며 조치를 당부하였다.

4월 15일 병조의 보고에 의하면 목천의 초수는 두 군데에 있으며 모두 범위를 정해 관리하여 잡수(雜水)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고 그 외의 지역은 경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목천의 초수로 확인되는 기사는 이 정도가 전부이지만, 그 외에 ‘초수리’로 검색되는 내용이 많다. 1444년 3월 20일 초수리(椒水里) 곁에 가깝게 사는 백성들 280인에게 술과 음식을 베풀었던 일도 있다. 기록의 대부분은 청주의 초수리인듯 하나 목천의 초수도 언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 후기의 목천 읍지인 『대록지(大麓誌)』에는 어떤 신통한 중이 약물을 구해 산중에 들어가 마시려고 병에 담아 들고 가다 잠깐 쉬는데 병이 쓰러져 물을 흘렸고, 이 자리에서 약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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