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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14
한자 木川縣衙址
이칭/별칭 목천현 관아,목천현 공해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 2길 3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913년 - 목천 현아 터 목천 초등학교 부지로 활용
소재지 목천 현아 터 -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서리 1 목천 초등학교지도보기
성격 관아 터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서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목천현의 관아 터.

[개설]

목천(木川) 현아(縣衙) 터는 조선 시대 목천현(木川縣)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지방 행정 구역이 개편되고 목천군이 천안군으로 통합됨에 따라 목천의 관아 건물이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목천 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또한 목천 현아 터는 ‘목천현 관아, 목천현 공해’로도 불린다.

[변천]

목천현 관아의 건물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지도 등을 통하여 그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는데, 관련 기록이 많지 않다.

1600년대 후반 제작된 지승(地乘) 지도에는 목천현의 관아에 총 18개의 건물이 그려져 있다. 1700년대 중반에 제작된 『여지도서』의 목천현 공해 조(公廨條)에는 객사(客舍) 18칸, 군기고사(軍器庫舍) 5칸, 아사(衙舍) 45칸, 관청(官廳) 10칸, 향청(鄕廳) 15칸, 군관청(軍官廳) 6칸, 작청(作廳) 15칸, 현사(縣司) 4칸, 무학당(武學堂) 3칸, 형옥(刑獄) 7칸 등 120칸이 넘는 건물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00년대의 고지도인 『해동 지도』에는 향교를 비롯하여 6개의 건물만 표기되어 있는데, 중요한 건물만 그린 듯하다. 그러나 『해동 지도』와 거의 유사한 『호서 지도』의 목천현에는 많은 건물이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의 실제 배치와 유사하게 표현되어 있어 주목된다.

목천현은 조선 시대에 읍호가 두 번 강등되었던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때에 관아 건물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또한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반란군이 목천현을 장악하면서 관아를 점령하려 하자 현감이 관문을 닫고 도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갑오개혁으로 목천군이 설치되었을 때까지도 관아 건물은 그 기능을 하였으나 1913년 일제의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천안군에 흡수되면서 필요 없게 된 관아 건물이 철거되었고 그 터는 목천 초등학교 교지로 제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목천 현아 터천안시 목천읍 서리 1번지에 있는 목천 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목천읍사무소에서 북쪽으로 350m 정도의 거리에 있다.

[현황]

목천 현아 터목천 초등학교가 건설된 지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관아 관련 유물이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목천 현아 터는 조선 시대의 목천현의 행정 중심지로 군현 치소의 지리적 환경을 알 수 있고, 이인좌의 난과 관련하여 청주를 통해 목천으로 진입하였던 반란군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 기초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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