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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고성욱(高成郁)[1621~1691]은 천안군 군남면[현 천안시 청룡동 지역의 조동산(鳥洞山)으로서 천안 삼거리 고속 도로 휴게소 부근으로 알려져 있다] 출신으로 몸소 20년 동안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자신은 기운 곳이 100군데도 넘는 누더기를 입고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지만, 부모에게는 가볍고 따뜻한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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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지역이 나타나 있는 옛 지도.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그려 놓은 고지도(古地圖)에는 전국 지도와 군현 지도가 있다. 전국 지도에는 모든 군현을 표기하기 때문에 천안 지역을 간략하게 그려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현 지도는 개별 군현만 그려 놓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국 지도에 비해 보다 풍부한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지도라는 것은 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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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자는 의숙(宜叔)이며, 정로위(定虜衛)를 지낸 곽영남(郭英男)의 아들이다. 곽의(郭義)[1562~?]는 효성이 깊어서 부모를 섬기는 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스스로 음식을 장만하여 부모 봉양하는 일을 직분으로 여겼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것을 얻으면 품에 지니고 돌아와서 부모에게 드렸으며, 항상 망태기와 통발과 오구를 들고 앞 냇가에서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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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김인립(金仁立)[1627~?]은 천안의 소동면[현 풍세면 일부 지역] 출신으로, 천성이 지극한 효자여서 힘써 농사지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하루도 정성 어린 음식을 거르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 말고도 하룻밤에 두세 번씩 일어나서 부모의 안부를 살폈다. 1654년(효종 5) 정월에 어머니가 병이 들어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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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박춘흥(朴春興)의 아들이다. 박인길(朴仁吉)[?~?]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대추 하나, 배 한 개라도 품에 넣었다가 반드시 부모에게 갖다 드렸다. 7월에 병들어 앓던 어머니가 갑자기 죽어 시신을 염하여 관에 옮긴 뒤였는데. 박인길은 칼로 손가락 끝을 짼 다음 목침으로 연달아 짓찧어서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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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직(敬直)이다. 적순부위(迪順副尉) 서혼(徐混)의 아들이며, 효자 서충필(徐忠弼)의 동생이다. 서충좌(徐忠佐)는 아이 때부터 성품이 순정(純正)하여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열두 살에 할머니 상을 당하여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아버지를 따라 시묘하면서 교대로 제사를 받들었고 탈상한 뒤에도 게으름이 없었다.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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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언직(彦直)이다. 적순부위(迪順副尉) 서혼(徐混)의 아들이며, 효자 서충좌(徐忠佐)의 형이다. 서충필(徐忠弼)은 타고난 자질이 순후(醇厚)하고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여러 해 동안 동생 서충좌와 함께 봉양하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자 변의 맛을 보고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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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 자는 우천(于天)이다. 효자 정려를 세운 서충필(徐忠弼)과 서충좌(徐忠佐)가 종조할아버지이다. 장령공(掌令公) 서정연(徐挺然)의 아들이다. 서한장(徐漢章)[1640~1677]은 천안 원일면[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워 겨우 7세 되었을 때 절구시를 지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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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송윤재(宋潤載)과 송지대(宋持大)의 본관은 여산(礪山). 정민공(貞愍公) 송현수(宋玹壽)의 후손이며, 송지대가 송윤재의 맏아들이다. 송윤재는 효성이 지극하여 효동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학질에 걸려 병세가 위독하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으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매일 사당에 절을 하며 어머니의 쾌유를 빌어 옷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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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영릉직(英陵直)을 지낸 양구화(梁九和)의 아들이다. 『영성지(寧城誌)』에 의하면 양호(梁好)는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4품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직(辭職)하고 귀향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가 질병에 걸리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으며,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삼 년 동안 시묘 살이를 하였다. 아버지가 일찍이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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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오시혁(吳始赫)과 오태현(吳台鉉)의 본관은 용안(龍安). 오시혁은 군수를 지낸 오형(吳亨)의 14세손이며, 오태현은 그의 아들이다. 오시혁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순장(巡將)을 행직(行職)하였으며, 부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다하였고 동기간에는 우애가 깊었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모은 재산을 여러 동생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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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하는 천안군 지역에서 300년이 채 못 되게 거주한 성씨. 1852년에 편찬된 천안 군지인 『영성지(寧城誌)』에 기록된 성씨를 보면, 10세[30년을 1세로 보아 대략 300년 정도의 기간] 이하로 군에 거주한 우거 성씨는 진주 강씨(晉州姜氏) 6명부터 전주 이씨(全州李氏) 1명까지 모두 37개 성관[성 및 본관]의 135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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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字)는 몽뢰(夢賚), 호는 운곡(雲谷)이다. 할아버지는 예조 판서, 아버지는 현령(縣令)을 지냈다. 우남양의 증손자 두 명이 천안(天安)에 살았는데, 모두 무과에 급제하였다고 전한다. 목사(牧使)를 지낸 우복룡(禹伏龍)이 종증손(從曾孫)이다. 천안의 군지인 『영성지』의 인물란에서 소개한 것으로 미루어 우남양이 천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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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때 천안군 지역에서 300년이 넘게 거주한 성씨. 1852년에 편찬된 천안 군지인 『영성지(寧城誌)』에 기록된 성씨를 보면, 10세[30년을 1세로 보아 대략 300년 정도의 기간] 이상 군에 거주한 원거 성씨는 천안 전씨(天安全氏) 39명부터 은진 송씨(恩津宋氏) 1명까지 모두 34개 성관의 228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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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원주(原州). 천안 군수를 지낸 원궤(元簋)의 5세손이다 원장(元墻)[?~?]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처럼 부모를 흠모하였고 부모의 뜻을 받들었다. 그리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아침저녁으로 죽순과 잉어를 구해 부모를 봉양하였다. 원장의 효성에 감복한 마을 사람들이 관아(官衙)에 알렸고, 주변 유생들이 서장(書狀)을 올려서 귀감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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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중(榮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공조 정랑을 지낸 유백순(兪伯純), 할아버지는 의금부 도사를 지낸 유보정(兪輔鼎)이다. 아버지는 효자 유언겸(兪彦謙)이다. 유경인(兪敬仁)[1525~?]은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였으며, 한결같이 아버지 유언겸의 효성을 법도로 삼았다. 가난하였지만 부모에게 술과 고기를 갖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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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현백(顯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금부 도사를 지낸 유보정(兪輔鼎), 할아버지는 유언겸(兪彦謙), 아버지는 유경인(兪敬仁)이다. 유명립(兪名立)[1572~1661]은 집안 대대로 천안에 살아왔다. 그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집안의 전통을 이었으며,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피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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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유언(柳堰)[1714~?]은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 하뜸 또는 하금곡 하쇠골이라 부르는 곳에 살았다. 어머니 정씨(丁氏)는 고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유언은 어린 나이에도 춥고 더운 때를 가리지 않고 나물을 캐고 고기를 잡아서 맛있는 음식을 공양하였다. 어느 날 유언이 산에 있을 적에 갑자기 마음이 움찔하고 식은땀이 나서 황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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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겸지(謙之)이다. 할아버지는 공조 정랑을 지낸 유백순(兪伯純)이고,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를 지낸 유보정(兪輔鼎), 어머니는 이구린(李龜鱗)의 딸이다. 유언겸(兪彦謙)[1496~1558]은 풍세면 남관리에서 태어났으며, 효행으로 1540년(중종 35)에 사직서 참봉(社稷署參奉)에 제수되었다가 1543년(중종 38)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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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증직된 유의신(柳義臣)의 아들이다 유연(柳淵)의 아버지 유의신은 임진왜란 때 한산도(閑山島)의 진중에서 왜적과의 전투 중에 숨을 거두었다. 이때 휘하 장병들의 동요를 염려하여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며 유연에게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지휘권을 넘겨받은 유연은 아버지의 소임을 대신하여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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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참판에 증직된 유후양(兪後陽)의 고손자이다. 유위선(兪緯善)은 집안이 지극히 빈곤하였으나 부모 봉양에는 소홀한 것이 없었으며, 부인 안씨(安氏)와 함께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유위선의 효행과 관련해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가 꿩을 물어와 효행을 도왔다는 일화가 전한다. 어사(御使)가 유위선의 효행을 아름답게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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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효자 유언겸(兪彦謙)의 증손자이다. 효자 유응채(兪應采)가 아들이다. 유후양(兪後揚)[?~?]은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지기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람의 도리를 대략 식별할 정도로 자랐을 때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아버지를 찾으며 소리쳐 울부짖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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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평(海平), 호는 신덕재(新德齋)이다. 윤두수(尹斗壽)의 7대손이며,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낸 윤세겸(尹世謙)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윤발(尹潑)이고, 아버지는 윤득실(尹得實)이다. 윤취동(尹取東)[1798~1863]은 어릴 때부터 손수 나무를 하고 불을 때며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자신의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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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편찬된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산업, 문화, 풍속 따위를 기록한 책. 천안 지역의 읍지는 여러 종류가 편찬되었다. 먼저 천안 지역의 사정이 수록된 지리지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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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성(安城). 기묘사화의 명현인 이덕함(李德涵)의 후손이며, 이도동(李道東)이 이인양(李仁養)의 아버지다. 이도동은 어머니가 병이 들자 두 번이나 손가락을 베어피를 마시게 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아버지가 부스럼 병을 앓을 때 고름이 터져 흘러나와도 꺼리지 않고 정성스레 간병하였으며, 자라와 잉어를 잡아 봉양하였다. 아무리 추운 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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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아버지는 진사 이억(李億)이며, 아들은 이홍기(李弘基)이다. 이병(李昞)[1626~1670]은 천안 원서면[현 풍세면 일부 지역]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행실이 돈독하여 부모를 효도로 섬겼다. 이병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6년 동안 시묘를 살면서 애통해 했다. 당시에 신묘한 샘물이 솟고 기르던 개가 꿩을 잡아 와서 공양하는 등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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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졸재(拙齋)이다. 천안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된 분곡(盆谷) 이승벽(李承璧)의 7대손이다. 이영록(李永祿)은 강화 유수를 지낸 일신재(日新齋) 홍락명(洪樂命)의 문인이다.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문학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여러 차례 임금에게 천거되었으나 끝내 품계를 받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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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완산(完山), 호는 후계(後溪)이다. 분곡(盆谷) 이승벽(李承壁)의 5세손이다. 이정항(李挺恒)은 환갑의 나이에도 부모의 묘소를 찾아 지극한 예를 다하였다. 묘소에서 절을 많이 하여 절할 때 무릎이 닿은 곳의 잔디가 없어지고 땅이 움푹 패었고, 성묘하며 쏟아 내린 눈물로 백양나무가 저절로 말라 죽었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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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출신의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장(雲長)이다. 태조 때의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장사길(張思吉)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갑산 군수 장진충(張進忠)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장득기(張得紀)이고, 할아버지는 내금위장(內禁衛將) 장훈(張訓)이다.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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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치등(穉謄)이고, 호는 검와(儉窩)이다. 고려 말 청백리로 알려진 백헌(栢軒) 전신(全信)의 후예이다. 전사성(全泗性)은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오촌 선생(鰲村先生)에게 학문을 배웠다. 항상 바른 자세로 글을 읽었으며, 늙어서도 『주역(周易)』을 열심히 공부하여 고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전한다. 1934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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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백제 개국공신으로 정선 전씨, 천안 전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씨의 도시조(都始祖). 전섭(全攝)은 기원전 18년경에 활동했던 인물로,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할 때 그를 보좌하였던 10명의 개국공신 가운데 한 명으로 전한다. 이후 전섭은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져 천안시 풍세면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하며, 천안 전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씨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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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이다. 전시오(全時五)[?~?]는 아버지가 죽자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검소하게 살며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이 명주옷을 장만하여 입기를 권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몸에 걸치지 않았다. 임종할 때 자손들에게 “화목에 힘써 효성을 이루고 진실로 항상 조심하며 이를 외우라.”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자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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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온양(溫陽).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정광원(鄭光元)의 손자이며, 정태항(鄭泰恒)의 증손자이다. 정간시(鄭簡始)[?~?]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들었을 때 약탕기 옆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추운 겨울에 굼벵이와 뱀 같은 것으로 양약(良藥)을 만들어 부모의 병을 치료하였고, 여름에는 정자에 모시고 부채질을 하여 사람들이 모두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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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아버지는 정일남(鄭日南)이다. 정계인(鄭戒仁)은 지금의 천안시 용곡동의 두텃골 출신으로 조선 숙종 때 사람이라 전한다. 평소에도 효행이 지극했다 하며 동리에서도 정계인의 선행에 칭찬이 자자했다. 정계인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1682년 4월 24일 밤에 불한당들이 몰려와 가재를 약탈하고 칼을 뽑아 아버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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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시은(市隱)이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대손이다. 정재준(鄭在俊)[?~?}은 여러 유학자들과 함께 1789년, 1799년, 1800년 3차례 상소를 하였다. 정재준은 조선 후기의 뛰어난 학자인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으로, 학문과 문장으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안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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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주선종(周善宗)은 열 살이 채 안 되어 어머니를 여의고 애달프게 울며 아버지를 위로하고 감싸서 주위 사람을 감동시켰다. 주선종은 관노비였던 까닭에 쉴 틈도 없이 밤낮으로 분주하였으나, 아버지를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살피고 의복과 음식을 올리는 일을 빠뜨린 적이 없었다. 1678년 3월 아버지가 병들어 거의 죽게 되자 정성을 다하여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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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서(聖瑞)이다. 운암(雲庵) 차원부(車原頫)의 16대손이자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의 9대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차우적(車禹跡), 증조할아버지는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을 지낸 차경로(車景路),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차득방(車得芳)이다. 아버지는 절충장군 차정당(車正堂)이다. 차지린(車趾麟)은 타고난 효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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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존심재(存心齋)이다. 보덕(輔德)을 지낸 채응복(蔡膺福)의 증손자이고, 채계하(蔡啓夏)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채홍혁(蔡弘赫)이다. 외할아버지는 한성일(韓聖一)이고, 정언(正言)을 지낸 채정영(蔡定永)이 그의 형이다. 채주영(蔡冑永)은 스스로 농사를 지어 부모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 극진히 봉양하였고, 늙어서도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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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문화 등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지역의 향토 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자신들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문화 등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천안 지역에는 조선 후기에 발간된 개별 읍지가 있었다. 『대록지(大麓誌)』[1779], 『영성지(寧城誌)』[1852], 『직산현지(稷山縣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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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현상후(玄尙後)는 아버지가 풍(風)으로 인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이 이는 병을 앓았는데 몇 해가 지나 고질병이 되자, 효성을 다해 약을 구해 바쳤고 자신이 아버지 병을 대신 앓게 해 달라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하였다. 어느 날 병이 위독하여 거의 구원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는데, 칼로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 입에 피를 흘려 넣어 소생케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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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고조할아버지는 보공 장군(保功將軍) 현윤무(玄允武),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현숙(玄璹), 할아버지는 장흥 판관을 지낸 현덕승(玄德升)이다.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아버지 현언(玄偃)과 어머니인 유영우(柳榮遇)의 딸 진주 유씨(晋州柳氏) 사이의 5남 2녀 증 4남이다. 부인에 대한 기록은 없고,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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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남양군(南陽君) 홍주(洪澍)의 후손이다. 홍천섭(洪天燮)[?~?]은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다듬이 방망이를 가지고 자신의 손가락을 찧어 생피를 흘려 넣어 3일을 더 살게 하였다. 어사가 지극한 효행이 천성에서 우러났다는 서계(書啓)를 조정에 올렸으며, 유생들이 포상을 바라는 글을 지어 올렸으나 정표를 받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