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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위례성, 낮에는 부여에 가 있는 백제 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179
한자 -慰禮城-夫餘-百濟王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주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9년 12월 25일 - 『천안의 땅 이름 이야기』에 수록
관련 지명 위례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용샘[위례산성우물]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위례성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지도보기
성격 지명담|신이담|동물담
주요 등장 인물 용|온조왕|소정방
모티프 유형 나라를 지키는 신령한 용|용으로 변하여 나라를 보살피는 왕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위례산에 전해 내려오는 용샘과 백제 왕에 대한 이야기.

[개설]

백제가 처음 도읍으로 정한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한강 이북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직산(稷山) 위례성(慰禮城)을 근거로 직산 지역을 백제의 초도지(初都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위례산성(慰禮山城)은 위례성의 백성들을 전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축성한 산성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보면 이곳에 1,690척[약 5㎞]의 성이 있고, 우물이 하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성에 있는 우물을 용샘이라고 하였는데, 「밤에는 위례성, 낮에는 부여에 가 있는 백제 왕」은 백제의 왕이 이곳 용샘을 통해 낮에는 백제의 수도인 부여에 가서 정사를 돌보고 밤에는 용샘을 통해 다시 위례성에 돌아와서 쉬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9년 12월에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땅 이름 이야기』에 일부 내용이 실려 있으며, 2010년 12월에 천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천안의 구비 설화』에도 내용이 실려 있다. 또한 2011년 충청남도, 국립 민속 박물관, 충남 역사 문화 연구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백제 관련 설화 자료집』에도 내용이 실려 있다.

[내용]

천안시 서북 지역에 위치한 위례산성에는 용샘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용샘은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명주실 세 꾸리가 들어갈 정도이다. 백제 왕[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으로 추정]은 용왕의 아들이라 용샘을 통해 서해 바다와 한강, 금강을 용의 모습으로 변하여 자유롭게 들락거렸다고 한다. 낮에는 용이 되어 용샘을 통해 부여 백마강(白馬江)으로 가서 후손들이 다스리는 부여를 보살피고 밤에는 돌아와 위례성에서 쉬었다고도 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374~412]과 장수왕(長壽王)[394~491]이 한성(漢城)[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을 공격하여 치열하게 싸울 때에도 용샘을 통하여 서해 바다와 한강으로 들락거렸다. 또 도읍을 금강(錦江) 유역으로 옮긴 후에도 고구려, 신라의 잦은 침입 때마다 백제 왕은 금강과 용샘을 들락거리며 전투를 지휘하고 군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왕의 처남이 아침에 사라졌다가 해질 녘에 지쳐 돌아오는 왕을 의심하여 용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제비를 미끼로 하여 백제 왕이 출입하는 곳에 낚시를 던져 놓았다. 용으로 변장하고 전장에서 싸우다 지쳐 돌아온 왕은 배고픔에 제비를 먹으려다 낚시에 걸려 그만 죽고 말았다. 왕이 낚시에 걸려 죽은 곳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위례산성에 있는 용샘이 하도 깊어서 알아보려고 실 끝에 추를 달아 넣어 보았더니 한없이 들어갔다고 한다. 실을 이어 가면서 끝까지 넣었더니 추가 부여 백마강에 닿았다. 그러므로 용샘부여 백마강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여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침공해 왔을 때도 백마강에 배만 띄우면 용이 나타나 꼬리를 휘젓는 바람에 배가 뒤엎었다고 한다. 새벽에 동쪽 하늘이 밝아오면 용이 위례성 용샘을 통해 부여 백마강으로 가서 적선을 공격하고 밤에는 위례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28]이 죽은 후 용이 되어 백제를 수호하였다고도 한다. 온조왕의 화신이 새벽마다 용샘으로 들어가기에 어떤 사람이 몰래 실을 발에 묶어 두었는데 후일에 소정방이 잡은 용의 발에도 명주실이 묶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백마강에서 신출귀몰한 용 때문에 고전을 하던 소정방은 용이 백마 고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백마를 미끼로 하여 용을 잡았다. 소정방이 용을 잡으니 비로소 백마강의 물길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밤에는 위례성, 낮에는 부여에 가 있는 백제 왕」은 죽어서 용으로 변하여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 왕의 이야기이다. 위례산성 안에 있는 용샘의 전설은 여러 갈래로 전하여지고 있다. 위례성으로 한성으로, 한성에서 웅진으로, 웅진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기는 동안 백제는 국세가 점점 발전하다가 의자왕의 실정으로 부여에서 패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밤에는 위례성, 낮에는 부여에 가 있는 백제 왕」은 백제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전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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