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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090
한자 地神-
이칭/별칭 도구지지미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정초|정월 대보름|칠석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주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을 돌며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개설]

지신밟기는 흔히 ‘집터를 눌러 준다’ 또는 ‘지덕을 눌러 준다’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집터를 보살펴 주고 관장하는 가신(家神)에게 풍물패가 고사를 지내며 축원하는 의례이다. 천안 지역에서는 주로 정초나 정월 대보름에 펼쳐지며 때로는 칠석 무렵에 베풀어지기도 한다.

또한 지신밟기는 새해를 맞이하여 각 가정이 무사태평하기를 비는 것과 아울러, 마을의 공동 기금을 나누어 내는 걸립(乞粒) 또한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절차]

마을에 따라 지신밟기는 얼마간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정초가 되면 마을의 풍물패는 공터에 집결하여 흥겹게 풍물놀이를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온 동리가 다 먹는 마을의 대동(大同) 우물로 가서 칠년대한 가뭄에도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기를 기원하는 샘굿을 펼친다. 이때 상쇠는 고사 덕담으로 “물 줍쇼 물 줍쇼 사해 용왕 물 줍쇼/ 뚫웁쇼 뚫웁쇼 물구멍만 뚫웁쇼/ 서해 물도 따라 들고 동해 물도 따라 들고/ 맑은 물만 출렁!”이라며 축원하여 준다.

샘굿을 마치면 집집을 돌며 본격적인 지신밟기를 거행한다. 풍물패가 사전에 정하여 둔 집의 대문에 이르면 상쇠는 문굿을 행하여 “문 여소 문 여소 주인 주인 문 여소 / 만인간 만복이 들어갑니다!”라고 고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풍물패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조왕신이 깃들어 있는 부엌이다. 이때 안주인은 솥뚜껑을 열어 놓고 밥그릇에 쌀을 담아 촛불을 켜 둔 불밝이쌀과 맑은 물 한 그릇을 떠 놓는다. 그러면 상쇠는 “누릅쇼 누릅쇼 조왕지신 누릅쇼!”라고 축원하여 준다. 이어서 풍물패는 터줏대감이 좌정하고 있는 장독대로 가서 “누릅세 누릅세 터주지신 누릅세!”라고 터줏굿[당산굿]을 한다. 안주인은 역시 불밝이쌀과 맑은 물 한 그릇을 차린다. 터줏굿을 마친 풍물패는 다시 마당으로 나와 안방 문을 열어 놓고 집안의 가장인 대주(大主)를 돌보아 준다는 성주신을 위하여 성줏굿을 베푼다. 그리고 마당에서 한바탕 신명나는 풍물놀이를 펼치고 나서 다른 집으로 간다. 풍물패는 길을 가다가 공동 우물을 만나면 다시 샘굿을 한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 엄정말에서 전승되었던 지신밟기는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마을에서는 6·25 전쟁 이전까지도 ‘도구지지미’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2일에서 14일까지 사흘 동안 지신밟기를 했다. 도구지지미는 지신밟기와 함께, 집을 세울 때 터를 다지려고 하는 지경다지기가 결합된 독특한 의식과 놀이였다. 풍물패가 먼저 지신밟기를 하고 나면, 곧이어 지경꾼들이 마당에서 선소리꾼이 메기는 후렴을 따라 부르며 지경다지기를 해 주었다. 이렇게 풍물패는 사흘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집집을 방문하여 지신밟기지경다지기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초저녁에 느티나무 고사를 지내고 지신밟기를 마친 다음에 아랫말 삼거리로 나아가 거리제를 지내며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지신밟기는 집터를 눌러주는 놀이와 의례를 통하여 각 가정의 안녕을 축원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곧, 집안에는 장독대의 터주신, 안방의 성주신, 부엌의 조왕신 등 가신들이 요소요소에 좌정하여 돌보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지신밟기는 이들 가신에게 치성을 드림으로써 가정이 무탈하고 만복이 깃들기를 축원하는 상징적인 의례이자 놀이인 것이다.

아울러 지신밟기는 으레 걸립과 연계되어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매년 동제를 지내거나 마을을 운영하려면 공동 기금을 확보하는 게 절실한데, 그 방편으로 풍물패가 집집이 지신밟기를 해 줌으로써 마을 사람들이 성의껏 내놓는 쌀이나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천안 지역의 지신밟기 전통은 1990년대 초까지도 여러 마을에서 전승되었다. 서북구쌍용동, 동남구신방동수신면 해정리 엄정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파와 농촌 공동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면서부터는 마을 단위로 거행되던 지신밟기의 전통도 대부분 중단되고 말았다. 이제 지신밟기를 이끌어 갈 만큼 출중한 기예를 지닌 풍물꾼들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하주성 편저, 『천안의 민속』(천안 문화원, 1991)
  • 『세시 풍속』-충청남도 편(국립 문화재 연구소, 2002)
  • 인터뷰(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 엄정말 권상국, 남, 78세, 2012. 8.)
  • 인터뷰(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 엄정말 홍성진, 남, 77세, 2012. 8.)
  • 인터뷰(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 엄정말 홍순임, 남, 79세,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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