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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16
한자 朴永學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8년 9월 25일연표보기 - 박영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박영학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20년 7월 7일연표보기 - 박영학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박영학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박영학 출생지 - 충남 천원군 수신면 발산리 158번지 지도보기
활동지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영학(朴永學)[1878~1920]은 1878년 9월 25일 충청남도 천원군 수신면 발산리 15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형을 받은 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이듬해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한 운동이었다. 시위 주모자들은 3월 31일 밤 자정 아우내 장터를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4월 1일 아침 아우내 장터에 몰려갔다.

오후 1시경 주모자 중의 한 명인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박영학을 비롯한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 그동안 태극기를 나눠 받은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도합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시위에 참여했던 박영학은 일제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7일 천안 헌병대에서 태형 60대를 선고받고 빈사 상태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매 맞은 후유증으로 이듬해인 1920년 7월 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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