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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57
한자 太極同盟
이칭/별칭 천안 태극 청년단,천안 태극 동맹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최초 설립지 태극 동맹 - 충청남도 천안시
성격 단체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1946년 광복 이후 활동한 반공 단체.

[변천]

일제 강점기 말 전쟁 막바지에 후방 민방위인 경방단(警防團)과 방공 감시대를 자율 운영하게 되면서 천안의 인사들이 모이는 계기가 됐다. 경방단은 위험이나 재해를 경계 방비하고 방공 감시단은 항공기의 공습으로부터 공격을 방비하는 민방위 단체이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이들은 의용 소방대로 창설 발대하고 태극 동맹 단체로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6년 신탁통치 찬반으로 좌우익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천안 지역 우익 세력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 일제 헌병 경찰이 철수하고 치안 공백 상태에서 의용 소방대와 태극 동맹은 치안 질서와 안보에 합력했다.

1946년 2월 9일, 좌익들이 우익 단체와 기관장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태극 동맹은 좌익의 거점을 기습 타격하여 관련자들을 수색 체포하여 천안 경찰서에 인계하였다.

6·25 전쟁 중 천안이 1950년 7월 8일 북한 인민군에게 점령되면서 1946년 2·9 의거에 앞장섰던 태극 동맹 대원 인사들은 체포, 감금, 고문을 겪었다. 천안군 인민 위원회는 태극 동맹 단원을 비롯한 우익 150여 명을 천안읍사무소와 천왕사 납골당 건물에 구금하였다. 이때 구속되지 않은 태극 동맹 대원들은 천안읍내와 면단위에서 반공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천안역 철로반에서 북한군 수송 작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1950년 9월 25일 천안에서 북한군이 후퇴하자 태극 동맹 단원들은 천안읍사무소와 천왕사 납골당에 구금되어 있는 우익 인사들을 구출하고, 좌익을 색출하여 체포하여 천안읍사무소에 임시 구금했다가 천안 경찰서로 인계했다.

[현황]

태극 동맹의 반공 투쟁 핵심 인사들은 천안 2.9 반공 의거 동지회 단체로도 활약했으며, 천안 삼거리 공원에 천안 2·9 의거 기념탑을 건립하는데 앞장섰고 2013년 현재까지도 매년 2월 9일에 천안 의용 소방대 주최로 기념식을 열고 있다.

[의의와 평가]

태극 동맹의 행동 강령인 “조국을 위하여 멸사봉공(滅私奉公)하고, 송죽(松竹) 같은 정신으로 일심단결(一心團結)하고, 인내자중(忍耐自重)하여 무명 일꾼이 되자”라는 정신은 현재의 천안 체육회, 천안 의용 소방대의 정신으로 발전하면서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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