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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40
한자 木川己未獨立萬歲運東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3월 14일연표보기 -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 발생
발생|시작 장소 목천 초등학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 1 지도보기
성격 항일 운동|시위운동
관련 인물/단체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 기념사업회

[정의]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했던 천안군 목천읍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시위운동.

[개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었다. 천안 지역에서도 경성[서울]과 평양 등에서 3·1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3월 14일 목천읍에서 천안 지역 최초의 만세 운동이 발생하였고, 이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천안 지역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역사적 배경]

일제의 식민 통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 통치였다. 이에 저항하는 민족 운동은 지속적으로 각 지역에서 발생하였고, 1919년에는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경과]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 무렵 천안군 목천읍에 있는 목천 보통학교[현재의 목천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약 120명[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 기념사업회에서는 171명으로 계산]이 교정에 모여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목천읍 읍내로 진출하여 일본 헌병대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 시위를 앞장서서 이끈 인물로 네 명이 체포되었는데,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전하여 오는 기록이 없다. 당시 목천 보통학교 학생들의 나이는 13~23세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의의와 평가]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을 이끈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그들이 학생이고 학교 안 교정에서 시위를 주동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은 천안 지역에서는 최초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으로, 이후 천안 각 지역의 만세운동에 영향을 미쳐 4월 1일 유관순 열사의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을 기념하고자 창립된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 기념사업회는 1989년 3월 14일에 목천 초등학교 운동장 동쪽에 높이 3.5m의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또한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여 2013년 현재 제94주년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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