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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396
한자 良堂里
이칭/별칭 양전리,당곡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종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천안군 성산면 양당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6년 10월 1일 - 천안군 남산면 양당리에서 천안군 직산면 양당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63년 1월 1일 - 천안군 직산면 양당리에서 천원군 직산면 양당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1년 1월 1일 - 천원군 직산면 양당리에서 천안군 직산면 양당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천안군 직산면 양당리에서 천안시 직산면 양당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2년 1월 1일 - 천안시 직산면 양당리에서 천안시 직산읍 양당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8년 6월 23일 - 천안시 직산읍 양당리에서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양당리로 개칭
학교 양당 초등학교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양당리 105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2.4㎢
가구수 229가구
인구[남,여] 532명[남자 287명, 여자 245명]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직산읍사무소의 서쪽 약 3.5㎞ 지점에 위치하며 양당 초등학교와 양당 저수지가 있다. 양당 저수지와 양당들판 황금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은 직산 12경으로 선정되었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 직산현 일서면 양전리(良田里)와 당곡리(堂谷里)의 일부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양전리의 ‘양(良)’ 자와, 당곡리의 ‘당(堂)’ 자를 따서 양당리(良堂里)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직산현 일서면 양전리, 당곡리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충청남도 천안군 성산면 양당리가 되었다. 1917년 10월 1일 성산면이 직산면으로 이름을 바꿈에 따라 천안군 직산면 양당리가 되었고,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되면서 천원군 직산면 양당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천원군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천안군 직산면 양당리가 되었고,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해 천안시 직산면 양당리가 되었다. 2002년 1월 1일 직산면이 직산읍으로 승격하면서 천안시 직산읍 양당리가 되었으며, 2008년 6월 23일 행정구가 설치되면서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양당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정 산업 단지 뒤편 용와산(龍臥山)에서 동북쪽으로 기맥(起脈)하여 양전산(良田山)을 형성한다. 동쪽이 양당리이며 서쪽이 마정리, 양전산의 북쪽이 당곡 마을로 예전에 산제당(山祭堂)이 있었다. 양당 저수지는 예전에는 동서 121m[400척], 남북 101.5m[335척]의 추자덕지제(抽字德地堤)였으며, 규모를 크게 증축하여 1947년 8월 준공되었다. 성환천의 상류이며 하천과 낮은 구릉, 평야 지대가 잘 발달해 있어 땅이름이 ‘양전(良田)’이라고 붙었다.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2.4㎢이며, 총 229가구에 532명[남자 287명, 여자 24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양당 1·2리의 두 개 행정리가 있다.

양전은 말 그대로 농사짓기 좋은 비옥한 땅이란 의미이며, 당곡리는 예전 양전산에 산제당(山祭堂)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양전산에는 미라사(彌羅寺)라는 사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터벌은 마정리와의 경계인데 예전 장이 섰다고 전해오며, 말 무덤이 있는데 옛날 전쟁 때 말이 많이 죽어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동쪽은 직산읍 상덕리·자은가리, 서쪽은 직산읍 석곡리·마정리, 남쪽은 직산읍 신갈리·모시리, 북쪽은 성환읍 율금리와 경계를 접한다.

신고 배를 많이 재배하고, 양전들판에서 벼농사를 한다. 편리한 교통 여건으로 마정 산업 단지, 천안 제4 공업 단지가 남쪽 인근에 있다.

양당 초등학교는 1946년 9월1일 직산 초등학교 양당 분교장으로 독립하였으며, 오리 전문 음식점 신토불이 천안점이 있는데 지역의 맛 집 명소로 찾는 이의 발길이 많다. 양당 저수지는 낚시터로 유명하여 직산읍에서 선정한 ‘직산 12경’의 하나이다.

우물제[井祭]를 지냈는데 1960~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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