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377
한자 苧里
이칭/별칭 모시울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종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천안군 성거면 저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3년 1월 1일 - 천안군 성거면 저리에서 천원군 성거면 저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85년 - 천원군 성거면 저리에서 천원군 성거읍 저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1년 1월 1일 - 천원군 성거읍 저리에서 천안군 성거읍 저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천안군 성거읍 저리에서 천안시 성거읍 저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8년 6월 23일 - 천안시 성거읍 저리에서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저리로 개칭
공공 기관 성거읍사무소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저리 57-26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1㎢
가구수 2,193가구
인구[남,여] 4,421명[남자 2,293명, 여자 2,128명]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성거산(聖居山) 아래 성거읍사무소가 소재하며, 모시울이라고 부른다.

[명칭 유래]

저(苧)라는 풀은 모시옷의 재료이며, 섬유질을 뽑아 짠 옷감이다. 모시+울[마을, 골, 울타리]은 ‘모시(苧)가 많은 마을’, ‘모시[苧]처럼 생긴 마을’의 뜻으로 풀이한다. 전설에 고려 시대 천흥사(天興寺)가 큰 절이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천흥리부터 모시울까지 사람들이 이어졌으며 사찰도 이곳까지였다고 하며, ‘부처님을 모시는 마을’이라 하여 모시울이라 했다고도 전해온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직산현(稷山縣) 이동면(二東面) 저동(苧洞)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 때 충청남도 천안군 성거면 저리가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성거면 저리가 되었고, 1985년 성거면의 성거읍 승격에 따라 천원군 성거읍 저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천원군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천안군 성거읍 저리가 되었으며,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하여 천안시 성거읍 저리가 되었다. 2008년 6월 23일 행정구를 설치함에 따라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저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백두 대간(白頭大幹) 금북 정맥(錦北正脈) 위례산성(慰禮山城)~성거산(聖居山) 바로 아래 있으며 한천천흥천이 만나는 이내천의 평야 지대 만호들[문앞들]에 있다. 위례산~성거산 지맥이 고원의 분지(盆地)처럼 사방을 에워싸며 수구(水口) 이내천이 한천과 합수하여 입장천~안성천~아산만으로 흘러든다. 만일령, 사리목, 걸마재, 접티 등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여 천험의 지형을 만든다.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1.1㎢이며, 총 2,193세대에 4,421명[남자 2,293명, 여자 2,12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단일 행정리로 되어 있다.

문앞들은 만호들이라 하여 삼한 때 만호(萬戶)가 살았다고 전해온다. 비렁잇들은 서당잇들라고도 하는데 두둘기 남쪽에 있는 들이다. 모래가 많아서 벼가 잘 죽고 물이 얼어서 농사를 잘 짓지 못하므로 논 한 마지기를 찰밥 한 그릇과 바꿨다 하는데 지금은 옥답으로 바꾸어졌다. 술청 거리는 주청가(酒廳街)라 하고, 모시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술집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장승 거리는 모시울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집 세 채가 있고 그 앞에 장승이 서 있다. 바위 배리는 저리 철교 안쪽에 있는 논으로 바위가 박혀 있으며, 이내골은 두 내가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이다.

동쪽은 성거읍 천흥리, 서쪽은 성거읍 정촌리, 남쪽은 성거읍 송남리, 북쪽은 성거읍 오색당리·오목리와 경계를 접한다.

특산물은 성거 거봉포도이고 벼농사도 많이 한다. 동쪽에 국도 23호선이 지난다. 수청 거리는 천흥 공업 단지의 입구이며, 주변에 상가들이 많이 형성되었다. 아파트 및 다가구 주택이 많이 입주해 있고, 동서로 나 있는 봉주로성거읍사무소가 소재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